[노트북을 열며] 김치, 먹어도 되냐고요!

중앙일보

입력

1998년 7월 검찰은 W, D, N사 등이 포르말린을 넣은 통조림을 만들어 팔았다고 발표했다. 통조림의 내용물인 번데기.골뱅이가 상하지 않도록 제조사가 포르말린을 넣었다는 내용이었다.

퇴근길 골뱅이나 번데기 안주에 생맥주 한잔으로 더위를 달랬던 사람들은 분노했다. 시체 부패 방지용으로 쓰이는 약품이 들어 있는 안주를 먹었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통조림에서 가장 많이 검출된 포르말린 양이 자연상태의 표고버섯에서 검출되는 양보다도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성급한 발표가 공연히 국민의 불안감만 증폭시킨 것이다. 통조림을 생산하던 업체의 도산도 이어졌다. 일부 피해자는 국가와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내기도 했다.

벌써 16년 전 일이지만 '라면 공업용 우지(牛脂:쇠기름) 파동'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89년 가을 검찰은 '라면을 공업용 우지로 튀긴다'는 내용의 익명 투서를 받고 수사를 시작했다.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한 거의 모든 라면 제조업체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100억원대의 라면제품이 수거되고 당시 라면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했던 삼양식품(당시 삼양식품공업)은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떨어졌다. 10여 년이 지난 97년 대법원 판결에서 모든 혐의가 무죄로 드러났지만 삼양식품은 파동 이후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때 회사가 사라질 위기까지 몰렸다. 삼양식품은 올 3월 말 화의를 마치고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특정 식품이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이 나오면 그때마다 한 차례씩 홍역을 치른다. 국민은 불안에 떨고, 해당 식품을 생산한 기업이나 팔았던 업소가 문을 닫기도 한다. 명백하게 건강을 해치는 성분이 포함된 식품을 만들고 판매한 기업이나 업소가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조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산 수입 장어의 말라카이트 그린 성분 검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외신이 중국산 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 성분이 검출됐다고 보도하자 국내 언론은 일제히 국민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말라카이트 그린은 전문가들조차 "물고기에 대해 독성이 있지만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는 성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곧바로 수입 장어의 성분을 검사해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암에 걸린다'며 보양식으로 즐기던 장어를 멀리했다. 그 결과 말라카이트 그린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국내 양만(養鰻) 업계의 매출까지 평상시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채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당시 중국산 장어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일본의 대응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에 사는 교포는 "(일본 국내에서 장어 파동이 났을 때) 일본 언론은 말라카이트 그린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본 후생성은 중국산 장어의 성분 검사를 우리보다 20일 늦게 했다. 일본의 차분한 대응이 검역시스템의 한계인지 국익을 생각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혼란을 줄이는 효과는 있었다.

식품의 위해성 여부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거나 몸에 해로울 수 있는 특정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만 가지고 유해성 여부를 판정할 수 없다. 식품의 유해성을 판정하는 기준 중에는 체중이 70㎏인 사람이 70년 동안 계속해 노출(섭취)됐을 경우 100만 명당 1명꼴로 암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라는 조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 물질을 경고할 때는 노출 양과 시간, 위험 등 납득할 만한 분석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정치권, 사법 당국도 한건주의식 공개는 자제해야 한다.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사실 공개로 국민이나 관련 기업들은 충격받고 불안해한다.

국민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1일에도 국정감사장에서는 '김치의 안정성'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야당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정작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김치에 납이 얼마나 들었느냐'가 아니고 '먹어도 되느냐'라는 점을 공방의 당사자는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