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세계 에이즈회의 개막

중앙일보

입력

120개국에서 5천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국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회의가 13일 파리에서 개막돼 에이즈 치료 연구의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효과적인 치료책 보급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참석,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들이 새로 개발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 최대의 논쟁은 이미 지난 1996년에 강력한 치료 효과가 있는 이른바 `칵테일' 요법이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세계 에이즈환자의 대부분이 값비싼 이 약물을 사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집중됐다.

또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150억달러 규모의 에이즈 퇴치기금 창설을 발표했지만 이 기금이 과연 조건 없이 집행될 것인지, 또 의회가 해마다 이를 승인할 것인지 등 문제도 새롭게 제기됐다.

대회 개막식에서 프랑스의 미셸 카자츠킨 국립에이즈연구소(ANRS) 소장은 미국의 지원기금이 에이즈 퇴치를 위한 사상 최대의 노력이라고 치하하고 유럽과 다른 나라들도 이를 따를 것을 촉구했으나 이 기금이 해당국에 직접 전달되기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간 방식으로 지급돼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

저명한 에이즈 경제학자 장-폴 모아티 교수(프랑스 마르세유 대학)도 부시 대통령의 에이즈 기금 지원계획은 의심할 여지 없이 관대한 것이지만 지원 조건에 미국 기업으로부터 일정한 가격에 치료제를 구입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들 약물의 카피약 구입이 가능해 진다거나 공개시장에서 특허권을 가진 업체와 카피약 제조업체들이 경쟁할 수 있게 한다면 훨씬 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에이즈 치료제 보급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경제적 측면에서도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다.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저개발지역에 치료제 보급을 확대할 경우 약물에 내성을 가진 HIV(에이즈 바이러스) 출현률이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더욱 위험한 행동에 빠져들게 돼 예방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그러나 모아티 교수는 요즘은 개도국에서도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면서 개도국에 치료법을 보급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은행 보고서를 인용, 남아공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경제는 4세대 안에 완전히 붕괴돼 케냐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참석자들은 미국의 에이즈 지원기금이 그로벌 펀드 등 다른 대외지원 예산에서 덜어온 것인지 여부에 의구심을 표시했으며 일부 인사들은 5년간에 걸쳐 나뉘어 집행되는 이 기금이 해마다 순조롭게 미국 의회의 지출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미 하원은 첫해에 30억달러를 지출하겠다는 정부안을 부분적으로 거부, 20억달러만을 승인했다. 상원은 30억달러 전액 지출을 승인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보수파의 압력에 굴복, 미국의 에이즈 기금중 3분의1은 안전한 섹스 대신 금욕을 권장하는 각종 교육에 사용하기로 했는데 에이즈 전문가들은 금욕이 비효과적인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3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중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5%에 불과하다. (파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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