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못할망정···"숙제도 못 베끼나" 되레 한·일 꾸짖는 中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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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의 진원지 중국은 왜 세계를 대혼란에 빠트린 바이러스 전파에 대해 “미안하다”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걸까. 최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서 논쟁을 일으킨 한 사건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중국 CCTV 유명 앵커이자 인터넷 스타인 추멍황 #코로나 사태 관련 세계에 사과하자 글 올렸다가 #반중국 행위에 도덕적 근거 제공한다 비판 받아 #신종 코로나 확산 중인 한국과 일본 상황에 #중국 네티즌, “숙제 베끼는 것도 못하나” #

중국의 검역 요원이 25일 중국 칭다오 공항에 내린 승객들에 대해 체온 검사를 하고 있다. 칭다오는 24일부터 한국에서 오는 승객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의 검역 요원이 25일 중국 칭다오 공항에 내린 승객들에 대해 체온 검사를 하고 있다. 칭다오는 24일부터 한국에서 오는 승객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25일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는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의 유명 앵커가 웨이보에 올린 글이 논쟁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글을 올린 앵커는 올해 52세의 추멍황(邱孟煌). 인터넷 스타로도 유명하며 보통 ‘아추(阿丘)’로 불린다.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앵커 추멍황은 지난 20일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해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제안의 글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앵커 추멍황은 지난 20일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해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제안의 글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는 중국 정부가 ‘동아시아의 병자’란 칼럼을 게재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중국주재 기자 3명을 추방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인 20일 저녁 짤막한 글을 올렸다. 먼저 “지금 동아시아의 병자란 간판이 부서진 지는 한 세기가 다 됐다”고 운을 뗐다.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앵커 추멍황이 '아추'란 이름으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글. "중국이 온화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주눅들지도 우쭐거리지도 않으면서 마스크를 쓴채 세계를 향해 절을 하고 '미안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라며 세계를 향해 사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비난을 받고 글을 내렸다. [중국 웨이보 캡처]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앵커 추멍황이 '아추'란 이름으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글. "중국이 온화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주눅들지도 우쭐거리지도 않으면서 마스크를 쓴채 세계를 향해 절을 하고 '미안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라며 세계를 향해 사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비난을 받고 글을 내렸다. [중국 웨이보 캡처]

이어 “그러나 우리는 말의 어조를 다소 온화하게 또 미안함을 담아서 그렇다고 주눅 들지도 우쭐거리지도 않으면서 마스크를 쓴 채 세계를 향해 절을 하고 ‘미안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고 제안했다.

신종 코로나의 글로벌 확산에 사과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글은 얼마 지난지 않아 내려졌다. 수많은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추에 반대하는 이들은 “바이러스는 천재(天災)다. 전 인류가 마주한 적(敵)”이라 중국이 굳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산시성에서 일터로 복귀하기 위해 농촌에서 올라오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체온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산시성에서 일터로 복귀하기 위해 농촌에서 올라오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체온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또 “중국의 국가급 매체인 CCTV 앵커의 말로는 매우 위험하다”며 “반(反)중국 행위에 도덕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꾸짖기도 했다. 중국이 사과하면 “중국인이 잘못했다. 중국인은 죽어 마땅하다”와 같은 말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사과하면 세계적으로 반중국 정서가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중국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데 아직 중국은 그만한 준비가 안 된 듯 하다.

중국 우한에 최근 새로 마련된 칭산난무 팡창의원. 병상 600여 개를 갖추고 신종 코로나 경증 환자를 집중 수용할 예정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우한에 최근 새로 마련된 칭산난무 팡창의원. 병상 600여 개를 갖추고 신종 코로나 경증 환자를 집중 수용할 예정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남에 대해선 가혹하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선 한국과 일본의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을 보면서 “숙제를 베끼는 것도 제대로 못 베끼냐”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신종 코로나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한·일에 이미 알려줬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소독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신화사는 이날 한국의 확진 환자가 977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25일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소독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신화사는 이날 한국의 확진 환자가 977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한국과 일본의 대처를 보아하니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면서 “베끼는 것도 제대로 못 하냐”고 수군대는 것이다. 아추의 인식이 중국에서 힘을 얻기까지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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