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나온 내용, 실질적 비밀 아냐" 수사 정보 누설 혐의 판사 3인 '무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법관 비리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정보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부장판사들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 [뉴스1]

법관 비리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정보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부장판사들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 [뉴스1]

“이 사건의 수사정보는 모두 실질적 보호 가치가 있는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행정상 필요를 위해 내부 보고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한다.”

신광렬 ·성창호 · 조의연 판사 1심 선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가 13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55ㆍ사법연수원 19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54ㆍ24기), 성창호(48ㆍ25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에 내린 판결의 요지다.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은 세 명의 현직 판사에게 모두 무죄 판결을 했다.

영장판사, 수석부장 보고는 관례

조ㆍ성 부장판사는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영장재판과정에서 얻은 수사정보를 신 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중 두 부장판사가 일부 정보를 취득해 수석 부장에게 보고한 사실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검찰 기소 내용대로 판사들이 수사기밀을 누설하자고 의도를 공유하고 사전에 공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더불어 조ㆍ성 부장판사의 보고는 직무상 행위로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두 판사의 혐의는 더는 살펴볼 필요가 없이 증명되지 않아 무죄로 판단했다. 두 부장판사는 통상의 예에 따라 주요 사건에 대해 형사수석 부장에게 보고했을 뿐이고 신 수석 부장이 이를 9개 문건으로 작성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란 의미다.

수사정보 넘긴 건 맞지만…‘실질적 비밀’ 아냐

법원은 신 전 수석부장판사에 대해서는 "각 문건을 행정처에 보고한 것이 별도의 공무상 비밀누설이 될 수 있다"며 추가로 판단했다. 영장 재판에 제출된 수사기록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담당 판사나 법원 관계자만 알아야 할 공무상 비밀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수사기록에 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을 공무상 비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보인지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이 수사정보를 언론에 제공한 점을 들어 신 전 수석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정보가 ‘실질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성창호 변호인 “무리한 기소”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에 대한 첫 법원 판단으로 관심을 모은 이날 재판에서 성창호·조의연·신광렬 부장판사가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스1]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에 대한 첫 법원 판단으로 관심을 모은 이날 재판에서 성창호·조의연·신광렬 부장판사가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스1]

성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재판 직후 “아직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실관계로 보나 법리적으로 보나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검찰의 기소를 비판했다. 이어 “불편한 재판이었을 텐데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성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기소 당시에도 ‘정치적 기소’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기소되기 두 달 전인 1월 말 성 부장판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에서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5월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성 부장판사 측이 ‘여당 인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하자 검찰이 정치적 사정으로 기소했다’고 의견서를 냈는데 이는 타당하지 않다”며 재판에서 상대측 의견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검찰 측 논리면 검찰의 법무부 보고도 문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행정처나 상부에서 판단을 받아 실행한 게 아님에도 이를 죄로 보고 기소한 것은 결과가 무죄로 예견된 기소"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잣대로 들여다보면 검찰도 수사상황을 법무부 검찰국에 보고할 때 문제를 삼았어야 할 것"이라며 "법원이 상식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무죄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1심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기록에 담긴 내용은 언론 보도보다 훨씬 상세하고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데 실질적 비밀이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