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위폐 '3043272가가나' 범인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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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누군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거의 하루에 한장씩 나옵니다. 꼭 잡혀야 할텐데.."

한국은행에서 위조지폐 통계를 맡고 있는 발권국 발권정책팀 전재현 과장은 최근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기번호 '3043272가가나' 1만원권, 이 위조지폐를 누가 만들고 있느냐다.

기번호 '3043272가가나' 1만원권은 올들어 급증하고 있는 1만원 위조지폐 가운데 같은 기번호로 가장 많이 발견된 화폐다. 지난해는 1/4분기부터 발견되기 시작, 총 1268장이 발견됐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147장이 나왔다. 상반기 발견된 전체 1만원권 위조지폐 가운데 이 한 종류가 12%를 차지한다.

동일 기번호 위조지폐가 거의 동일범 소행인 점을 감안하면 이 위조범은 기번호 '3043272가가나' 지폐로만 이미 2415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발견된 것만 그렇다. 문제는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는 것. 기번호 '3043272가가나'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과장은 "한국은행에서 정사를 하면 지금도 거의 하루에 1장씩은 나온다"며 "이 지폐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는 현재로선 알수가 없다"고 말했다.

5000원권 위조지폐 가운데는 '3043272가가나' 1만원권 보다 한수 위가 있다. 5000원권 77246계열 지폐다. 기번호에 77246이 공통적으로 들어간 이 위조지폐들은 지난 2004년 3/4분기부터 발견되기 시작해 올해 상반기까지 총 8625장이 발견됐다. 역시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4300여만원어치다.

77246계열의 '패밀리'의 구성은 다마 2772464라(4101장), 마다 2772466마(1528장), 다마4772466다(1333장), 마마 7772466다(809장), 다자 1772466다(754장) 등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77246계열 5종 세트'다.

'3043272가가나' 1만원권이나 '77246계열' 5000원권과 같은 다량 유통되는 동일 기번호 위조지폐들은 20여년만에 국내 지폐 교체를 이뤄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새 지폐 발행의 주된 이유가 급증하는 화폐위조 방지였고 위조 지폐의 대부분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성인오락실에서 발견된 위조지폐들을 포함한 만원권 동일 기번호 위조지폐의 비중은 2004년 이후 기준으로 56.7%, 올해는 78.7%를 차지한다. 5000원권의 경우 '77246계열' 한 종류가 2004년 3/4분기 이후 발견된 전체 5000원권 위조지폐 1만1979장의 71.2%다. 대략 10여명 남짓한 위조범들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위조지폐의 70 ̄80%를 제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위조지폐들은 대부분 기번호당 1,2장씩만 발견된다.

동일기번호 위폐 비중이 높은 이유는 제조비용과 관련이 있다. 정밀한 위폐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밖에 없다. 다른 번호로 1,2장씩 낱장으로 만들어봐야 '일당'도 빠지지 않으므로 제대로 된 위조지폐가 나오면 계속 재생산해 내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위폐를 많이 만들수록 제조고정비용이 줄어드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동일기번호 위폐들은 다른 위폐들에 비해 훨씬 정교하다. '색상이 잘 나오고' 육안으로 봐서는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은 정도다. 전 과장은 "지폐의 표면이 요철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스캐너로 뜨더라도 색깔이 제대로 나오기 쉽지 않다"며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대량 유통 위폐들이 등장한 것은 고화질스캐너, 프린터 등이 개발되면서 부터다. 이들 디지털 정보기기들이 대중화되고 쉽게 구입할 수 있게되면서 위폐제작도 조직이 아닌 대부분 개인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발견된 동일기번호 위조지폐들은 물을 묻히면 그림이 모두 지워지는데 이는 일반 프린트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전 과장은 "인쇄를 하게 되면 별도의 제작 장소와 분업이 필요하다"며 "지금까지의 위조지폐들은 모두 프린트로 제작되고 있어 개인 차원의 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권 지폐의 발행으로 동일 기번호 위조지폐의 위력도 당분간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위조 방지 기능이 대폭 강화된 새 5000원권이 발행된 데 이어 내년 1월 새 1만원과 1000원권도 나올 예정이다. 이들 새 지폐에는 홀로그램 등 각종 첨단 위조방지 기법들이 총동원됐다.

형법에서 위조지폐 제조시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한 엄정한 처벌 법규의 중압감도 여전하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는 아직 이르다. 첨단 위조 방지 기술 만큼이나 위조 기술의 발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조지폐는 첫 거래에서 잡히지 않을 경우 추적이 쉽지 않다는 것도 어려움이다. 거래 과정에서 여러개의 지문이 묻기 시작하면 추적의 단초를 잃게 된다.

올초 발행된 새 5000원권을 위조한 지폐도 상반기 중 벌써 11장이 발견됐다. 아직은 조악한 수준의 위조지폐지만 '위조의 욕구'는 여전함을 보여준 셈이다. 위조지폐와의 전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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