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로컬 영화상, 글로벌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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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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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덕분에 또 놀랐다. 올해 5월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이번에는 내년 초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외국어영화상은 물론이고 감독상·각본상 부문도 후보다. 아카데미상은 아직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의 바뀐 이름)과 주제가상의 예비 후보일 뿐이지만, 미국 언론은 장차 발표될 감독상·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도 거론하고 있다.

놀라움은 상의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다. 아카데미상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미국의 시상식, 봉 감독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로컬’이다. 일례로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은 미국에서도 LA지역에서 일정 기간 개봉했느냐가 기본적인 출품자격이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주는 골든글로브상도 비슷하다. 칸, 베를린, 베니스 같은 국제 영화제가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영화를 발굴해 전 세계 언론에 첫선을 보이는 것으로 명성을 쌓은 것과 다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미국에선 올 가을 개봉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미국에선 올 가을 개봉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더구나 ‘기생충’은 감독도, 배우도, 배경도, 이야기도 어김없이 한국영화다. 봉 감독이 이전에 만든 ‘설국열차’나 ‘옥자’처럼 할리우드 스타나 미국 자본과 손잡은 영화가 아니다. 미국 관객들이 꺼린다는, 자막을 읽어야 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미국의 주요 영화상에 거론되니 의미가 크다. 빈부 격차와 계급갈등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독특하게 풀어낸 이 영화의 매력이 거대 시장 미국에서도 대중적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번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는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도 있다. 영화팬들이 젊은 시절부터 그 이름을 익히 알아온 거장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스코세이지와 봉 감독이 나란히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인상 깊었다. 물론 수상은 다른 얘기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스코세이지는 6차례 후보에 그치다 ‘디파티드’로 처음 받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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