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시한부 철도 파업 끝났지만 11월이 진짜.."정권이 답해야 할 차례"

중앙일보

입력

철도노조는 11일 오전 9시부터 14일 오전 9시까지 3일간 시한부 파업을 벌였다. [중앙포토]

철도노조는 11일 오전 9시부터 14일 오전 9시까지 3일간 시한부 파업을 벌였다. [중앙포토]

 3일간 진행된 철도노조의 시한부 파업이 14일 끝났다. 열차 운행은 점차 정상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11월 본 파업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 노사는 교섭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철도노조가 내건 요구 조건을 들여다보면 타결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철도업계의 분석이다.

 철도노조는 시한부 파업에 돌입하면서 4개의 요구조건을 걸었다. ▶총인건비 정상화 ▶내년부터 4조 2교대 시행 위한 인력 충원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와 자회사 처우 개선 ▶KTX·SRT 연내 통합 등이다.

 철도노조, 11월 중 무기한 파업 예고  

 문제는 이들 요구 조건에 대해 코레일이 책임지고 답을 내놓을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선 총인건비는 기획재정부가 해당 공기업별 정원 등을 고려해 매년 책정해주는 인건비 한도다. 이 금액 내에서 임금 문제를 해결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실제 인원이 아닌 줄어든 직급별 정원을 기준으로 총인건비를 산정하다 보니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적게 산정되고, 부족한 인력 탓에 시간 외 근무를 하는 경우 제대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임금 체불'이라는 용어까지 쓰고 있다.

 코레일도 총인건비에 대한 노조의 문제 제기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정원 감축 문제, 초과 근로 불인정 문제 등이 겹쳐서 한때 400억원가량 인건비가 부족해 간부와 직원들이 고통 분담을 통해 해결한 게 사실"이라며 "올해는 사정이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알리는 서울역 전광판. [중앙포토]

철도노조의 파업을 알리는 서울역 전광판. [중앙포토]

 그러나 이 관계자는 "총인건비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우리가 기재부에 개선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직접 해결을 할 수는 없다"며 "게다가 수많은 공기업 중에 코레일에만 예외를 적용해주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4개 요구조건 모두 코레일 권한 밖  

 4조 2교대 문제도 마찬가지다. 코레일 노사는 오영식 전 사장 시절이던 2018년에 정비, 역무 등 분야의 현재 3조 2교대 근무를 2020년부터 4조 2교대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이 때문에 철도노조는 4조 2교대를 위해 필요한 인력 4000여명을 추가 고용하라고 요구 중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당장 이 정도 인력을 충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재부의 허가가 필요한 데다 만일 늘리더라도 수입은 제자리인데 인건비만 더 들어갈 경우 경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외부기관에 용역을 준 결과 1900명가량의 추가 채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이를 다시 검토한 뒤 필요 인력의 충원을 국토교통부와 기재부에 요청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원하는 채용 규모도 차이가 크지만, 이 역시 코레일의 권한은 아니다.

2016년 철도노조 파업으로 전동차들이 차량기지에 멈춰서 있다. [중앙포토]

2016년 철도노조 파업으로 전동차들이 차량기지에 멈춰서 있다. [중앙포토]

 세 번째 요구 조건인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는 KTX 승무원 등을 자회사가 아닌 코레일 본사가 직고용하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민노총 계획 따른 정치 파업 해석도

 승무원을 생명안전업무 담당으로 간주할 법 근거를 만드는 게 우선이고 이어서 이를 위한 추가 정원 확보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와 기재부 소관인 셈이다.

 KTX와 SRT를 연내 통합하라는 네 번째 요구는 현 정부의 대선공약이다. 코레일이 추진 여부를, 그것도 연내 추진을 답할 입장이 아니다. 철도노조가 시한부 파업 첫날 출정식을 세종시의 정부청사 앞에서 가지며 '노사 협의'가 아닌 '노정 협의'를 요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철도노조는 시한부 파업 첫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정식을 갖고 '노정 대화'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철도노조는 시한부 파업 첫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정식을 갖고 '노정 대화'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여기에 철도노조의 파업이 단순히 코레일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총 차원의 파업 일정에 따르고 있다는 점도 해결의 걸림돌이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끝나자마자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행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16~18일의 시한부 파업을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게다가 두 노조 모두 시한부 파업에 이어 다음 달 본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요구 조건도 단위 사업장에서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운, 보다 큰 사안들이다. 민노총 산하 다른 사업장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노사간 자율 협의로 풀어야" 고수

 한 공기업 관계자는 "민노총이 내년 총선 정국을 앞두고 연말까지 상당수 요구 조건을 관철하려하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노사 간 자율적 협의만 고수하고 있다. 이창희 국토부 철도운영과장은 "기본적으로 코레일 노사 간의 임금협상인 만큼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서 의견 접근을 이루는 게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공기업 노사 문제에 개별적으로 간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철도노조 등의 요구에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국민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현 정부가 철도노조 등의 요구에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국민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렇게 되면 단위 사업장별 노사 협상은 별다른 진척을 보기 어려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현 정부에서 해당 사안들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노조의 요구 조건이 사실상 정권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에서 답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라며 "정부가 자꾸 책임을 피하다 보면 결국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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