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한국 배 사려 해운사 세탁? 홍콩 법인이라는데 주소는 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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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원이 유엔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에 의해 압류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Wise Honest)호의 매각을 승인했다. [연합뉴스]

미국 법원이 유엔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에 의해 압류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Wise Honest)호의 매각을 승인했다. [연합뉴스]

 미국이 몰수해 매각 처리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호를 한국 해운사가 북한 관련 회사에 직접 매각해 대북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과 관련, 실제 선박을 사들인 회사는 홍콩에 있는 제3의 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10일 “2015년 와이즈 어네스트호가 북한에 소유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한국 선박이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회사에 선박을 곧바로 매각했다면 한국과 미국의 독자 제재를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한국의 독자 제재인 5ㆍ24 조치를 위반하면 국내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VOA는 북한 선박이 되기 전 와이즈 어네스트호를 소유했던 한국 해운사는 ‘명산해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명산해운에 따르면 선박 매각 당시 구매자(buyer)는 북한 회사가 아니라 홍콩 회사인 A사였다. 명산해운 측은 전화 통화에서 “당시 정상적인 조건에서 선박을 매각했으며, 이를 입증할 자료도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 관련된 거래라는 것을 알았다면 선박을 매각했을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매각에 따른 예치금은 홍콩이나 상하이의 은행 계좌에 넣는 것으로 돼 있다. 명산해운으로선 매각 당시 선박이 결과적으로 북한 회사에 넘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미국이 압류한 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 [연합뉴스]

미국이 압류한 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 [연합뉴스]

이는 바꿔 말하면 북한이 의도적으로 복잡한 절차를 이용해 한국 선박을 인수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 와이즈 어네스트호의 기록을 보면 수상한 정황이 있다. 유럽선박정보시스템(EQUASIS)에 따르면 이 선박을 소유한 회사는 명산해운→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2015년 3월5일)→코리아 송이 쉬핑(2018년 1월)으로 바뀐다. 코리아 송이 쉬핑이 현재까지 선박을 소유하고 있는 북한 해운사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그사이 선박 이름은 명산해운이 소유하고 있을 당시의 ‘에니’호에서 ‘송이’호(2015년 3월)→와이즈 어네스트호(2015년 8월)로 바뀌었다. ‘송이’와 ‘와이즈 어네스트’란 상호로 선박명과 해운사명이 복잡하게 상호 교차하며 바뀌었다. 그 사이 기국(flag state)도 한국에서 캄보디아(2015년 2월)→시에라리온(2015년 8월)→탄자니아(2016년 5월)→북한(2016년 11월)으로 네 번이나 달라졌다.

EQUASIS 기록을 보면 북한 해운사 코리아 송이 쉬핑이 인수하기 전 선박을 소유했던 것으로 나타난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은 홍콩 법인으로 돼 있다. 명산해운이 A사와 매각 계약을 맺은 것은 2015년 1월인데, 2개월 뒤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이 기록상 처음 등장한다. A사와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 간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자료 확인 결과 사실상 코리아 송이 쉬핑이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황이 나왔다.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의 주소가 ‘북한 평양 낙랑구역 충성3동 코리아 송이 쉬핑’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선박정보시스템(EQUASIS) 웹사이트에 나온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 정보. 중국 홍콩 회사로 돼 있다. [웹사이트 캡쳐]

유럽선박정보시스템(EQUASIS) 웹사이트에 나온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 정보. 중국 홍콩 회사로 돼 있다. [웹사이트 캡쳐]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웹사이트에 있는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의 정보. 평양이 주소로 돼 있다. [웹사이트 캡쳐]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웹사이트에 있는 와이즈 어네스트 인터내셔널의 정보. 평양이 주소로 돼 있다. [웹사이트 캡쳐]

선박 이름과 소유사, 기국을 복잡하게 여러 차례 변경해 북한 소유 선박임을 알아차리기 힘들도록 ‘신분 세탁’하는 것은 북한이 자주 쓰는 제재 회피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제3국 법인으로 돼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해운사들도 언제든 알지도 못한 채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유관부처와 2015년 선박 매각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 중”이라며 “의도가 없었는지도 감안해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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