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부모 수업 듣고 A+학점…‘대학판 숙명여고’ 5년간 638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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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교수비리 진상규명 학생위원회 등 학생들이 지난 7월 19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비리교수 징계 및 재발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북대학교 교수비리 진상규명 학생위원회 등 학생들이 지난 7월 19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비리교수 징계 및 재발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북대 A교수의 아들‧딸은 아버지와 같은 학교‧단과대에 다니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수업을 총 7과목 듣고 모든 과목에서 최고평점(A+)을 받았고, 딸은 8과목 중 7과목의 점수가 A+이었다. 딸의 평균 평점은 4.4점(4.5점 만점)이었지만, 아버지 수업을 제외하면 3.4점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전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버지 수업을 들었고, 동일과목을 중복으로 수강하는 방식으로 A+을 획득했다.

최근 5년간 교수인 부모의 수업을 들은 대학생이 638명으로 조사됐다. 부모와 같은 학과에 소속돼 있으면서 수업을 들은 학생이 376명, 학과가 다른데도 부모 수업을 들은 학생은 262명이었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국립대 교직원의 자녀 수강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8 교수‧자녀 간 수강 및 성적부여 등 학사 운영실태 조사’ 자료를 공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조사 대학 184곳 중 163곳(88.6%)의 대학에서 교수와 자녀가 같이 다니고 있었고, 학생 638명이 부모가 가르치는 수업을 들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63곳의 대학 중 교수 583명은 자녀 599명(2명 이상 포함)과 학과까지 같았고, 부모 수업을 들은 학생은 376명(62.8%)이었다. 1개 과목만 수강한 학생은 120명, 2~7개 과목 222명, 8~9개 과목 26명이었다. 11과목 이상을 들은 학생도 8명이나 됐다. 부모 교수의 강의를 듣지 않은 학생은 221명으로 조사됐다.

학과가 다른데도 부모 수업을 들은 학생도 적지 않았다. 부모와 다른 학과 소속인 학생 2494명(교수 2347명) 중 10.5%에 해당하는 262명이 부모의 강의를 수강했다. 1개 과목만 들은 학생은 147명, 2~7개 과목 110명, 8~10개 과목 3명, 11개 과목 이상 2명이었다. 부모 강의를 수강하지 않은 학생은 2017명으로 확인됐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는 지난해 말 서울과기대 교직원의 자녀 수강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후 ‘교수‧자녀 간 강의 수강 공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많은 학교가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거나 여전히 이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수강생을 사전에 신고하도록 한 ‘사전신고제’를 도입한 학교는 전체의 55.1%였고, 위반교원에 대한 제재조치 규정을 마련한 학교는 44.4%에 불과했다.

부정사례가 적발됐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도 드러났다. 이번 조사를 통해 총 5개 학교에서 13건의 부정 사례가 확인됐는데, 10건에 대해 주의‧경고 등 가벼운 처분이 내려졌다. 나머지 3건은 조치가 진행 중이다.

박경미 의원은 “부모와 자녀가 한 대학에 소속돼 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교수가 시험출제‧성적평가를 하는 상황에서 자녀가 부모의 수업을 수강하는 것은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교육부의 정기적인 실태 조사와 대학의 관련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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