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벽 낮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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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분단과 함께 시작된 광복 44년의 세월 속에서 분단의 벽이 한치도 낮아짐이 없이 켜켜이 높아져가고 있음을 우리는 거듭 확인하고 좌절한다.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남북의 첨예한 대결은 서로의 적대감만을 확인하며 44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끝내 허물 수 없는 불신과 대결, 그리고 적대의 장벽으로 분단의 벽은 남아 있어야만 할 것인가.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지만 북쪽의 남조선 혁명통일 정책은 포기되지 않았고, 남쪽은 이를 유신체제로 전환하는 정권적 미끼로 삼았다. 7·7선언의 통일여망과 기대가 당시 여론조사로 84%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껏 그 선언의 구체적 실천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채 값비싼 시행착오로 끝날지 모를 퇴색한 선언의 의미만이 남게 되었다.
교류와 개방, 그리고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했던 7·7선언은 밀입북·밀방·밀파의 형식으로 결국은 북쪽의 대남 공작에 역이용되는 또 다른 형태의 대결만을 남긴 채 후퇴의 조짐으로 변질되어 가고있다. 7·7선언의 통일염원을 남과 북 서로가 현실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채 오히려 남쪽의 갈등과 분열을 조성한 쪽으로 결과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 점에 대한 다각적 분석과 검토를 거친 후에야 정부의 통일정책은 현실성 있는 통일정책으로 기능할 것이고, 그것이 선언만으로 퇴색하는 한 정권의 통일구호가 아닌 민족의 통일정책으로 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쪽의 변화에 대한 현실성 없는 낙관주의가 7·7선언을 퇴색하게 만든 1차적 이유임을 시인해야 한다. 북이 세습왕조체제와 폐쇄적 통제경제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국제적 개방과 남북간 화해는 무망하다는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 현실적 제한을「맏형」의 관용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정부 대 정부간의 협상과 대화의 길밖에 없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이 통일에로의 첩경을 무시했던 까닭은 정권적 업적주의에만 급급해 통일에로의 길을 체제 내부적 갈등요인을 해소하는 임시방편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북쪽은 경제적 빈곤과 세습적 정권이양의 부도덕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남쪽은 민주화와 개혁의 의지를 왜곡시키기 위해 당장 금강산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양 선전책으로 통일정책을 유도한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북의 개방과 인권과 자유화를 촉구하고 남쪽의 민주화를 유도해야할 민중세력은 북의 억압과 폐쇄사회에는 눈감은 채, 북쪽의 편향된 통일노선에 합세하여 남쪽의 민주화를 소요와 갈등의 늪으로 몰아가려 하고있다.
서경원 사건, 문 목사·임양·문 신부의 밀입북, 밀파는 남쪽의 온건한 민주화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공안정국의 경색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대외개방경제에 역점을 둔 북쪽의 온건개혁주의자들의 설자리마저 없애는 반통일적 행위였음을 돌이켜 반성해야만 한다.
6공화국의 존재기반은 민주개혁을 위한 6·29선언의 실천, 남북교류와 개방, 그리고 적대관계의 청산을 향한 7·7선언에 있음을 새삼 확인해야만 한다. 지난 1년간 시행착오의 교훈 속에서 두 선언을 퇴색과 퇴보로의 길로 몰기에 앞서 두 선언의 실천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민주개혁과 통일에로의 길을 작게나마 열어보겠다는 실천의지가 없는 한 6공의 존재의미는 상실하게 된다. 8·15의 의미를 복고주의에서 찾기보다는 미래를 향한 실천의 걸음으로 거듭 다짐 할 것을 또 한번의 광복절을 맞아 당부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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