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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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인이 갖추어야 할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교양을 갖는 일이다. 이것은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만 스스로가 터득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견문과 사교를 통해 얻는 교양도 적지 않다. 교양은 공인이 상식 밖의 일이나 판단을 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고상한 인격도 결국은 교양의 바탕위에서 형성된다.
둘째는 도덕적 자제력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도덕적인 기준으로 재고 재단하면 얼른 보기에 답답할지 모르지만 중심이 잡혀 있다. 공인이 줏대 없이 칠락 팔락하면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역시 칠락 팔락한다. 그런 사람이 이끄는 사회나 조직은 위엄과 힘이 없다.
셋째는 정확한 말을 할 줄 알아야한다. 정확한 말이란 책임을 질 수 있는 말을 의미한다. 공인이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면 그 사회는 도덕적인 지표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난세를 살면서 두가지 유형의 공인들을 보와 왔다. 하나는 정확한 말을 해야 할 때 일부러 부정확한 말을 해서 자신의 부귀 영화를 꾀하는 공인이고, 다른 하나는 정확한 말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입을 굳게 다물어 보신하는 경우다. 어느 쪽도 공인의 떳떳한 자세는 아니다.
그러나 더 딱한 노릇은 도덕적인 자제력을 잃고 되는대로 지껄이는 공인이다. 자신에게는 물론 그 사회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말을 허투루 지껄여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불쾌감을 주는 경우다. 이 경우는 동정의 여지도 없다. 그것은 바로 인격적인 미숙의 소산이기 때문에 변명하면 할 수록 손해다.
요즘 어느 여당 국회의원이 『전북은 전원 야당 의원만 뽑았으므로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크게 구설수를 만나 곤혹을 치르고 있다. 그 지역 지구당 위원장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속에 없었던 말도 아닌 것 같다.
그 말은 결국 「뜨거운 맛」을 전북 도민 아닌 본인에게 먼저 안겨주었다. 그는 가을 정기 국회의 예결위원장 내정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전북 도민들은 그 보다 더한 문책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우리 나라 정치도 민주주의를 할양이면 우선 공인들은 말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에 도취된 사고 방식과 언행으로는 민주주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공인의 자격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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