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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때만 쓴소리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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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대법관 생활은 '고독한 수도승'에 비유된다. 그만큼 육체적.정신적으로 외롭고 힘들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퇴임하는 대법관들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이 적잖이 남는다.

6년간의 대법관 생활을 마치고 10일 퇴임한 5명을 대표해 강신욱 대법관은 '쓴소리'를 했다. "아직도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말로 상징되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깊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퇴임한 대법관 12명의 퇴임식 연설에서 '사법권의 독립'과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단골메뉴였다. 지난해 9월 퇴임한 최종영 전 대법원장은 "여론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고 이를 폄하하려는 행동은 참으로 유감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10월 퇴임한 이용우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존폐 등을 둘러싼 이념적 혼란과 관련, "통일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유지담 전 대법관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진정코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침묵했다"고 반성했다.

이처럼 쓴소리와 자기반성이 반복되는 대법관들의 퇴임사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 현직 판사는 "대법관들이 퇴직할 때 그런 말들을 하기보다는 임기 중에 정정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거나 재판을 통해 소신을 드러냈다면 오히려 더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사법부가 사회 여론, 특히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간간이 나온다. 대법관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하고 지나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앞으로도 국가보안법이나 사형제 등 대법원의 판단이 남은 중대한 현안이 적지 않다.

11일 취임식에서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하겠다"고 결의를 다진 5명의 신임 대법관이 6년 뒤 퇴임식에서 전임자들처럼 후회와 아쉬움의 말을 반복하지 않길 기대해 본다.

문병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