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일 안보조약 파기 시사"…日 군비증강 명분 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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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가 지난달 28일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가 있는 요코스카에서 가가함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가 지난달 28일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가 있는 요코스카에서 가가함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ㆍ일동맹의 근간으로 60년간 작동해온 미ㆍ일 안전보장조약 파기 의사를 내비쳤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측근들에게 ‘미국이 공격받을 때 일본 자위대가 도울 수 있게 (미ㆍ일안보조약을 개정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구상을 피력했다”고 25일 보도했다.
1960년 1월 미ㆍ일 양국이 맺은 현재의 미ㆍ일 안보조약은 일본이 군사적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군이 자동 개입할 수 있도록 명문화돼 있다. 반면 자위대는 미국이 공격을 받더라도 군사적으로 지원할 의무가 없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조약 내용이 불공평하다며 파기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28일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이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본 정부는 블룸버그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보도에 나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며 “백악관으로부터 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는 것이라는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NHK는 백악관 당국자가 “보도 내용은 파악하고 있지만, 부정확한 점이 많이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동개입 근거 

하지만 일본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ㆍ일 방위조약 개정은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만큼 향후 추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의 인도ㆍ태평양전략 참여를 발판으로 군비 증강에 나선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돕는 일본이라는 방향으로 미ㆍ일 안보조약이 개정되면 자연스럽게 일본 자위대의 전력 강화로 이어진다. 또 그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안보 전략을 유지하는 두 축은 한ㆍ미동맹과 미ㆍ일동맹이었는데 군사적으론 미ㆍ일동맹이 더욱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ㆍ일 안보조약의 개정은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대의 자동개입을 실효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군사력 증강에 나서왔다. 지난해 11월 국방비가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기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오랜 기간 고수해온 전수방위(專守防衛: 일본이 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어 차원으로 반격한다) 원칙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아베 내각과 집권 자민당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이유로 공격용 무기인 장거리 순항미사일 도입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또 2차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항공모함을 갖기 위해 이즈모급 호위함인 ‘이즈모’와 ‘가가’ 2척을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월 23일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에서 미국 해병대의 F-35B 스텔스 전투기가 강습상륙함에 수직 착륙하고 있다. 일본도 이즈모급 호위함 2척의 갑판을 개조해 F-35B를 탑재할 계획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3월 23일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에서 미국 해병대의 F-35B 스텔스 전투기가 강습상륙함에 수직 착륙하고 있다. 일본도 이즈모급 호위함 2척의 갑판을 개조해 F-35B를 탑재할 계획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선 미ㆍ일 안보조약 개정엔 트럼프 대통령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현재 자위대는 영국군과 프랑스군 수준으로 미군을 지원하는 정도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만일 안보조약 개정이 등장했다면 이는 미국 정부가 요구해온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복수 소식통 인용 보도 #일본 정부 부인했지만 현실화 땐 파장 #"트럼프, 현 안보조약은 불공평 #미국 공격받을 때 자위대 도와야"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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