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前유엔대사 "통화 누설 강효상, 후배 경력 망가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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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전 유엔대사. 우상조 기자

김숙 전 유엔대사. 우상조 기자

김숙 전 유엔 대사는 고교 후배인 현직 외교관으로부터 전달받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해 물의를 빚은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정치인이 후배의 경력을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사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사건을 "외교·안보 업무를 다루는 재외공관의 중견 외교관이 3급 비밀로 분류된 사항을 정치인에게 유출하고, 정치인은 이를 공개한 것"이라며 "국가 보안업무규정에 위배되므로 절차를 거쳐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강 의원에게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전달한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 K씨에 대해 "(통화내용 유출) 의도나 과정은 별로 중요치 않다. 결과가 중요하다"며 "기강 해이나 보안 의식이 굉장히 약해졌다. 이것은 국가 외교 안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치명적인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K씨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업무 담당자들를 향해 "모든 사람이 내가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 하는 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주미대사만 볼 수 있도록 봉인된 내용을 대사관 직원 12명이 돌려보는 게 어떻게 가능하나'라는 진행자 질문에는 "대사가 판단하건대 대사관에서 고위직, 공사나 참사관이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대사의 판단하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이걸 왜 외부에 유출하느냐. 그게 문제"라고 거듭 지적했다.

김 전 대사는 K씨로부터 전달받은 통화 내용을 공개한 강 의원을 향해서도 "정치 공방으로 번진 것은 큰 잘못"이라며 "(강 의원이) 고교 후배 외교관의 경력을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국익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했다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대해서도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는 것은 수긍이 안 된다"며 "불법적으로 획득한 것을 공개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라고 얘기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회를 통해 국가기밀이 공개되는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외부유출 금지를 전제로 한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 보고 직후 여야 간사들이 경쟁적으로 언론에 관련 내용을 터트린다고 지적한 그는 "정치인들 또는 공인들도 보안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이 미국과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이번에 유출된 내용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만한 그런 사안은 들어가지 않았다"면서도 "안보상 민감성이 있든 없든 간에 정상 간에 두 분이 한 얘기가 바깥으로 나갈 정도면 상대방에서 우리 측에 대한 신뢰가 점점 얇아지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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