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송영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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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야기에 대한 소망은 인간 일반이 보편적으로 획득하고 있는 심리충동의 한가지 양상이다. 우리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며 어른들로부터 옛날 얘기를 들었던 경험은 일생에 걸쳐서 우리들 누구에게나 가장 행복한 기억을 이룬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그토록 매혹스런 이야기들과 그토록 매혹스런 이야기하기일 담론의 솜씨를 가졌던 이야기꾼들을 그리워하는 일에 다름 아닌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에서 우리의 그리움, 우리의 간절한 소망은 좌절되었다.
우리는 뛰어난 솜씨를 지녔던 이야기꾼들을 더 이상 우리의 주위에서 만나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그런 인물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경이롭고도 하나의 행운이 될 것이다.
송영 씨의『도깨비 할머니 』
(『문예중앙』여름)는 이승에 살면서도 이승의 사람들보다는 영계의 사람들과 더욱 친숙하게 사귀는 유별나면서도 기이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송영 씨는 이승·영계·영혼의 세계, 혹은 귀신과 도깨비와 같이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모티브들을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도깨비 할머니』가 화제 삼고 있는 것은 무속이나 심령 얘기가 아니다.
이 소설의 서술적 관심의 중심에 놓여있는 인물은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 장성시켜 짝을 짓게 하는 이외의 소망이란 가져본 적이 없는 한 어머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6·25의 와중에서 그 아들마저 잃고는 평소 그녀가 친숙했던 세계에로 잠적하고 만다.
보기에 따라서는『도깨비할머니』는 너무나 양산되고 복제된 나머지 식상할 만큼 식상해버린 소위「6·25소설」이라는 유형에 듬직한 소설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전쟁의 체험이 아니고「서다빠꿀 할머니」라고 명명된 한 여인의 삶의 방식 그 자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유의스런 문학적 현상은 이 소설이 화제 삼고 있는 제재나 그 제재가 자리잡는 시공간적 특수성에 있지 않다.
요약하면 독자를 사로잡아 읽는 이의 상상력을 한껏 고무하는 이 소설의 신선하고도 경이로운 흥미는「서다빠꿀 할머니」가「나」라는 화자에게 들려주는 도깨비 이야기와 이야기꾼의 능숙하고도 매력 있는 이야기 솜씨가 제공하는 흥미다.
가장 평이한 방식으로 진술해서『도깨비 할머니』를 읽는 일은 유쾌한 체험이었다. 그런데 이 유쾌함은 기지에 차있고 신비스러우며 유머러스하기 조차한 도깨비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탁월한 이야기꾼과 만난 데로부터 결정적으로 연유하고 있다.
그리고「서다빠꿀 할머니」가 말하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기실은 우리의 삶을 파탄시키고 뒤틀리게도 하는 모든 악과 광기의 정체들을 빗댄 하나의 은유였음이 밝혀지면서 유쾌하기만 했던 체험은 의미 있는 체험으로 확대되고 심화된다.
우리에게 의미 있고도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탁월한 이 화술은 누구의 것인가.「서중바꿀 할머니」의 것인가, 작가의 것인가.
부질없는 자문이지만 유능한 재능의 진정한 소재를 가리는데는 필요한 물음일 수도 있다. <한용환·소설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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