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짧게, 갈채에 흥분 말라” 일본 자민당 실언 방지 매뉴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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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쿠라다 요시타카 일본 올림픽담당상이 지난달 10일 총리 공관에서 사표를 제출한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교도=연합뉴스]

사쿠라다 요시타카 일본 올림픽담당상이 지난달 10일 총리 공관에서 사표를 제출한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교도=연합뉴스]

소속 의원들과 각료들의 실언과 망언에 휘청대는 일본 자민당이 급기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배포했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올림픽담당상 등 잇단 사퇴 계기 #“역사인식·성소수자 관련 발언 주의”

마이니치 보도와 중앙일보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매뉴얼은 ‘참의원 유세활동 핸드북’의 호외 형태로, ‘실언과 오해를 방지하려면’이란 제목이 달렸다. e메일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참의원 선거 출마 예정자들에게 배포됐다.

매뉴얼 제작은 지난 4월 동료 의원 후원 행사에서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이와테의) 부흥 이상으로 중요한 건 다카하시 의원”이라고 말했다가 사임한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전 올림픽담당상 사례가 계기였다고 한다.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 당내 주의를 환기하겠다는 의도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매뉴얼(A4용지 1장) 모두엔 “발언 전체가 보도되는 일은 없다. 자신의 발언이 언제든 (특정 부분만) 편집·발췌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 보도 내용을 결정하는 건 눈앞의 기자가 아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쉼표를 계속 찍으며 늘어지듯 말하면 편집될 위험이 커진다. 짧은 문장으로 잘게 나눠 표현하고, 불필요한 표현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타이틀(제목)로 뽑히기 쉬운 강한 표현을 주의하라”는 대목도 있다.

자민당이 배포한 ‘실언 방지 매뉴얼’. [교도=연합뉴스]

자민당이 배포한 ‘실언 방지 매뉴얼’. [교도=연합뉴스]

▶역사 인식, 정치 신조에 관한 개인적 의견 ▶성별 또는 성 소수자에 대한 견해 ▶사고나 재해와 관련해 배려가 결여된 발언 ▶병이나 노인에 대한 발언 ▶친한 이들끼리 할법한 잡담조 표현 등 5개 패턴에 특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선 “나중에 사죄하기도 어렵고, (논란이)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사적 대화도 언제 누가 스마트폰으로 전송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라”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을 언급할 땐 한층 더 배려하라” “주변 갈채에 흥분하면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할 수 있다. 자신의 표현에 브레이크 걸 준비를 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마이니치는 ‘실언 매뉴얼’까지 만드는 상황을 두고 자민당 내에선 “참 딱하다”는 냉소도 나온다고 전했다.

한편 인터넷상에 ‘사쿠라다 실언집’이 나돌 정도로 말실수가 잦았던 사쿠라다 전 담당상은 14일 한 모임에서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달라” “나처럼 안 되도록 정치인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자조했다고 한다. 그는 수영 스타 이케에 리카코(池江璃花子)의 백혈병 투병 소식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기대했는데) 정말 실망”이라고 해 물의를 일으켰다. 사이버 안전 담당 대신을 겸하면서도 “직접 컴퓨터를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한 것도 논란이 됐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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