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도둑 꼼짝마! "50m 땅굴 파서 기름 한 방울 빼가도 우린 다 알아요"

중앙일보

입력

벨라루스의 드루즈바 송유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드루즈바 송유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3월 A씨는 대규모 팀을 꾸려 ‘작전’을 준비했다. 50m에 이르는 땅굴을 뚫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쳐 파는 계획이었다. A씨의 계획에 가담한 인원만 40여명. 일당은 충남 지역 도로변에 있는 폐업 주유소를 임대하고 작전을 실행했다. 폐업한 주유소가 도로 너머에 있는 송유관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는 사전 조사도 마친 상태였다.

이들은 도로 밑을 가로지르는 땅굴을 팠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미량의 기름을 지속해서 빼낸 후에는 임대한 폐업 주유소의 저유소에 차곡차곡 모았다. 땅굴조, 도유(盜油)조, 판매책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기름도둑 일당의 계획은 성공을 목전에 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기름 한 방울 팔아보지 못하고 지난해 9월 경찰에 검거됐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도유 모니터링 시스템 덕분이었다.

대한송유관공사가 9일 도유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신기술을 활용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범죄를 미리 방지하는 한편 올해부터 처벌규정이 강화돼 앞으로는 A씨 일당 같은 사례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사의 도유범죄 근절 대책 중 핵심은 자체 개발한 'dopco 누유감지시스템(d-POLIS)'이다. 송유관은 일정 압력을 유지한 상태로 휘발유·경유 등이 흐르게 돼 있다. d-POLIS는 송유관에 설치된 센서로 미세한 압력·유량·온도·비중 변화를 24시간 감시한다. 수시로 전송되는 정보는 자동으로 분석돼 기름이 새는 위치까지 알려준다.

공사가 새로 도입한 배관손상관리시스템(PDMS)도 도유범죄 예방에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도유 장치 설치 시 배관 표면에 발생하는 전류의 차이를 감지하는 기술로, 도유를 위해 구멍을 뚫는 등의 작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공사는 현재 송유관 주변에 도유범이 접근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감지하는 진동감지시스템(DAS)과 드론을 통한 감시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도유 방지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사진 대한송유관공사]

대한송유관공사의 도유 방지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사진 대한송유관공사]

지난달 1일부터 개정된 송유관안전관리법이 시행돼 도유범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기존에는 송유관안전관리법상 훔친 기름을 유통시킨 장물범은 형법 적용을 받아 7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을 내게 돼 있었다. 개정안은 절취한 석유인 줄 알면서 이를 취득·양도·운반·보관·알선을 하면 송유관안전관리법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강화됐다. 현행 1억원인 도유신고 포상금을 상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사 관계자는 "도유 범죄는 1년에 10여건 정도 발생하고 지난해 14건 발생했지만 그중 10건은 대한송유관공사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사전 적발해 검거한 사례"라며 "전체 도유범죄 중 80% 이상이 대한송유관공사의 감시망에 덜미를 잡혀 검거한 도유범 숫자도 총 8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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