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증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20대 예술가 벌금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청계천 베를린광장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이 그라피티로 훼손돼있다. [뉴스1]

서울 청계천 베를린광장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이 그라피티로 훼손돼있다. [뉴스1]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목적으로 독일 베를린시가 기증한 ‘베를린 장벽’ 전시물에 ‘그라피티’(graffiti·스프레이 페인팅 예술)를 한 예술가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23일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라피티 아티스트 A씨(29)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날 재판의 쟁점은 A씨가 훼손한 베를린 장벽이 공용물건에 해당하는지, 그라피티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 등이었다.

검찰은 그라피티가 허가된 장소에서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행위라며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A씨의 변호인은 그라피티는 ‘예술 행위’이며 베를린 장벽의 효용을 해하거나 파괴하지 않았고, 이미 장벽에 많은 낙서가 돼 있어 보존가치가 큰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맞섰다.

양측 의견을 모두 검토한 배심원 7명 중 6명은 A씨에 유죄 평결을 내렸다. 배심원 4명은 벌금 500만원, 2명은 벌금 500만원에 집행유예 2년, 1명은 벌금 3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의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배심원 의견을 받아들여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예술적 행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시 소유의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를 통해 가치를 손상한 것으로 유죄를 인정한다”며 “다만 악의적 행위로 보이지 않고, 범행 처벌 전력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6월 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청계2가 베를린 광장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 작업을 해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훼손한 베를린 장벽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고자 독일 베를린시가 2005년 기증한 것으로, 1989년 통일되면서 철거된 뒤 베를린 마르찬(Marzahn) 공원에 전시됐던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인 장벽 일부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