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개혁의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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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의 우리 사회 상황은 2년전 6·29선언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6·29선언 두 돌을 맞아 우리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모습과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6·29 선언은 확실히 30여년의 권위 주의체제로부터 우리를 탈출시킨 일대 전기였다. 6·29로 인하여 권위 주의 세력과 국민의 민주화 세력간의 정면 충돌은 회피될 수 있었고, 혁명과 유혈 없는 안정적 민주화 개혁의 길은 열리게 되었다.
6·29가 누구 작품이냐는 논의는 별로 중요치 않은 얘기다.
그것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거대한 국민 에너지가 노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고, 그 정신은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한마디로 응축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6·29로 점화된 민주화 개혁은 지난 2년간 속도나 내용에 있어 적절히 추진돼 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확실히 6·29전과 같은 억압적 권력과 인권탄압·기본권 제약 등의 현상은 사라지고 국회·정당·언론의 활성화, 사법부의 기능 회복, 사회 각 분야의 자유화는 이뤄졌고 이뤄지고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전개가 있는 반면 사회의 안정감이 현저히 약화되고 각계 각층의 욕구 분출 현상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등 부정적 측면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해 6·29정신의 구현은 아직 여러 가지로 미흡한 실정이다.
그 원인을 생각하면 첫째,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화 개혁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민주화란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닌데도 노 정부는 우리의 여건과 발전 단계, 국민 여망을 감안한 종합적인 민주화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받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이에 따라 민주화 개혁의 내용과 방향·속도를 두고 사람마다, 세력마다 의견이 다르고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상황이 온 것이 아닌가. 오늘의 욕구분출 사태도 이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민주화 추진의 주도 세력이 불 분명하고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이다. 수구 인맥을 안고 있는 민정당은 처음부터 개혁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국회에서 여당을 누른 야당들도 안정된 개혁추진의 힘도, 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처럼 주도 세력이 없기 때문에 여태 악법 개폐도 매듭짓지 못하고 각종 분규나 갈등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이 무력·무책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합의된 프로그램의 부재, 주도 세력의 결여는 불가피하게 정국의 방황과 혼란의 심화를 가져오고 민주화개혁을 더디게 하거나 왜곡시킬 우려를 안게 된다.
따라서 이체 두 돌을 맞는 6·29의 그 민주화 정신을 살리고 갈등과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이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 정부는 남은 3년여 임기동안 실시할 민주화 계획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구해내야 한다. 이 계획에는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의 청사진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민이 신뢰할만한 민주화 추진 세력의 형성에 나서야 한다. 그러자면 6·29의 그늘에 묻혀 아직도 온존되고 있는 구인맥의 점진적 정리와 나쁜 과거의 사슬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의 전면등장이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민주화가 정부와 정치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만큼 민주화를 가능케 할 사회 각분야의 성숙된 역량 발휘도 필수적임을 아울러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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