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격려냐 완쾌빈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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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13일 전교조분회결성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도중 투신, 입원중인 서울 구로고(교장 구창모) 총학생회장 유호철군(17·3년)에게 이 학교 전교조분회소속 교사가 찾아가 전한 격려편지가 『투신격려냐』 『완쾌격려냐』라는 설전이 벌어져 물의를 빚고 있다.
발단은 이 학교 김모교사(25)가 21일 고대구로병원에 입원중인 유군에게 「그대의 숭고한 의지와 위대한 결단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호철군의 용단은 전교조의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며 인류의 자유해방에 길이 빛날 것이다」는 내용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치료에 힘쓰길 빈다」는 완쾌를 비는 내용과 함께 전하면서부터.
유군에게 전해진 편지 내용을 본 가족과 학부모들은 『문병온 교사가 그런내용을 쓸수 있느냐』며 22일 오후4시 교무실에 몰려가 1시간동안 항의했고 일부 학부모들은 『호철이의 투신은 교사의 사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 시교위로 찾아가 김교사의 타학교 전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구교장도 『아무리 젊은 교사의 행동이지만 교육자로서 있을수 없는일』이라며 김교사 문제를 시교위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교사는 『편지를 쓴 것은 유군 아버지가 유군의 안정을 위해 면회를 금하고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경우 선생인 나의 마음을 전해 위로하고 싶었을뿐』이라고 밝히고 『유군이 용기를 잃지않고 치료에 힘쓰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교사는 또 『유군이 투신전에 유서를 쓴 사실도 병문안 다음날인 22일에야 알았으며 그전엔 유군과는 아무런 대화나 접촉이 없었다』며 『편지는 평소 생각을 3시간정도 정리해 썼으며 「투신격려」로 알려져 물의를 빚게돼 경솔했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학교 전교조 분회소속교사들도 『김교사 편지내용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충분히 있지만 「노조교사가 학생을 사주해 투신하게 했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군이 투신자살 기도전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유서를 쓴 사실이 밝혀져 일부에서 투신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데 대해 일부 교사들은 『교조결성을 둘러싸고 심한 마찰을 빚어온 학교당국·교사·학생들간의 알력에서 심한 갈등을 겪은 유군이 충동적으로 투신한것』으로 보고있다.
전교조소속 하모교사(30)는 『학교측이 평소 비판성향이 강한 학생들이 주축이 된 교내 「풍물반」서클 출신의 유군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꺼렸으며 유군이 이끄는 총학생회 요구에 학교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여 유군이 고심해왔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아버지등 가족도 유군의 성적부진을 들어 아들의 총학생회 활동을 탐탁잖게 여겨 유군이 움츠러든데다 양달섭교사(31·국사)의 직위해제등 교직원노조탄압에 총학생회장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라는 「총학무용론」이 일반학생들 사이에 제기돼 유군은 몹시 괴로워 했다는 것. 특히 투신 며칠전부터 「학생회장이 비굴하고 무책임하다」는 등의 유인물이 두차례나 교내에 뿌려지기도 했으며 투신사건이 일어난 13일의 「교조지지 집회」도 총학생회가 배제된 가운데 2학년 중심의 문예반·풍물반 학생들이 주도, 유군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위에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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