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의원|농민 운동기반 정계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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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대 국회 개원 때 두루마기 차림 등원, 외유 때의 추태 등 기행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던 서경원 의원(52)이 평양 잠행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또 한번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서 의원은 지난 4·26총선 때 가톨릭 농민 회장으로 평민당에 재야 영입 케이스로 입당해 황색 바람을 타고 전남 함평 영광에서 당선된 초선
그는 가톨릭 농민회에서도 가농의 명성을 전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등 현장 운동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76년 함평 고구마 사건 때 그는 농협을 상대로 단식농성을 하는 등 3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끝에 수 백명의 공무원·농협직원을 유용혐의로 처벌받게 하고, 1백60여 피해농가에 3백만원의 보상을 받아내 농민운동을 정치투쟁으로 변질시키는 역할을했다.
그는 84년부터 가농 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농민운동을 재야의 정치 투쟁과 연결시켜 스스로 투정에 앞장섰는데 79년엔 오원춘씨등과 전주성당에서 인권 탄압 반대 운동을 별이다 경찰관 코를 물어 공무 집행방해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사망으로 풀려났으며, 80년 5·18땐 광주사건에 연루, 군재에서 내란 선동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형 집행 정지로 나왔다.
서 의원은 37년 전북 정창에서 목공장을 경영하는 서재선씨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 집사인 아버지를 따라 화순근처 수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바람에 학교엔 가지 못했다. 그후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촌 운동을 하다 73년 고대 노동 문제 연구소에서 실시한 농민교육 프로그램에 참석, 농촌 훈제에 눈을 뜨게 됐으며 가능과 인연을 맺으면서 투쟁가로 이름을 날려 74년 전남지부총무, 80년 청년 회장에년 전국부회장, 84년부터 회장을 역임했다.
고향 함평에서 흙벽돌 집에 살고있는 그는 4·26 총선 때는 빈털터리로 당선됐고 국회개원 때 두루마기에 무신 차림으로 봉 고를타고 등원해 「농민대표」임을 과시하기도 했다.그러나 배지를 단지 1년도 못돼 양복차림에 고급승용차를 타 눈길을 끌기도 했고 지난2월 금대중 총재를 따라 유럽을 순방했을 때는 비행적내에서의 맨발소동·외국 여인 희롱 등 여러가지 해프닝을 벌인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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