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값 하락도 '빈익빈 부익부'…보증금 적은 지방이 더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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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격 하락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전세가격을 내건 부동산의 모습. [중앙포토]

전세가격 하락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전세가격을 내건 부동산의 모습. [중앙포토]

 지방에 이어 서울 등 수도권으로 확대되는 전세값 하락도 ‘빈익빈 부익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3억원 미만의 지방 아파트의 전세값 하락폭이 더 컸다. 커지는 역전세난 우려에도 임대가구의 재무 건전성은 아직 양호하다는 평가다.

아파트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웃돌면서 #1~2월 거래 아파트 전세값 절반이 하락 #서울의 전세가격 하락 아파트는 28.1% #임대가구 1.5% 빚내도 보증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금+금융부채가 금융자산 1.3배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최근 전세시장 상황 및 관련 영향 점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전세값이 2년전보다 떨어진 아파트의 비중은 52%였다.

 2011년 1월~2019년 2월중 확정일자를 받은 600만건의 아파트 전세거래를 분석한 결과다. 전세값이 30% 이상 떨어진 아파트 비중도 4.7%나 됐다.

 지역별 온도차는 컸다. 지방의 경우 지난 1~2월 전세가격이 떨어진 아파트 비중은 60.3%에 달했다. 수도권은 46.5%였다. 서울은 전세값이 내려간 아파트 비중은 28.1%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은 “올들어 서울과 경기ㆍ인천 등의 전세가격 하락폭이 커지고 있으며 경남과 울산 등은 주력산업의 침체에 따른 지역 경기 부진으로 큰 폭의 전세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 규모가 작은 아파트일수록 전세가격 하락폭이 더 컸다. 2년 전과 비교해 지난 1~2월 기준 전세가격이 10% 이상 떨어진 아파트 비중은 보증금 3억원 미만인 경우 30% 안팎을 기록했다. 보증금 1억원 미만 32.6%, 보증금 1억~2억원 34.6%, 보증금 2억~3억원 29.0%였다.

 반면 보증금이 5억원 이상인 경우 전세가격이 10% 넘게 떨어진 아파트 비중은 9.5%에 불과했다. 보증금 3억~5억원인 아파트 중 전세값이 하락한 경우는 16.0%였다.

 한국은행은 “보증금 3억원 미만의 전세아파트가 많은 지방을 중심으로 전세가격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기준 평균 아파트 전세가격은 수도권 3억1000만원, 전국은 2억3000만원, 지방은 1억5000만원이었다.

서울 아파트 모습. [중앙포토]

서울 아파트 모습. [중앙포토]

 전세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는 수요를 웃도는 공급 때문이다. 전세 공급 대비 수요 상황을 나타내는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기준으로 지방은 82.4, 수도권은 83.3을 기록했다. 통계가 확보된 2012년 7월 이후 최저치다.

 ‘헬리오시티’ 등 신규 입주 물량이 늘어난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75.7로 더 낮았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이하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의미다.

 전세가격이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반환 능력은 아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준으로 보증금 부채가 있는 주택임대가구는 211만 가구(2018년 환산 기준)다.

 전세값이 10% 떨어지면 임대가구의 1.5%인 3만2000가구만이 예ㆍ적금을 깨고(금융자산 처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전세가격 하락에 따른 보증금 차액을 임대인에게 돌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분석됐다.

 부족한 자금 규모는 2000만원 이하가 71.5%, 2000만~5000만원이 21.6%, 5000만원 초과가 6.9%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전세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가구 비중은 14.8%로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임대가구의 보증금 반환 능력은 양호한 편이었다. 임대가구는 실물자산(가구당 평균 8억원)을 만이 보유하고 있어 총자산(금융 및 실물자산) 대비 보증금을 포함한 총부채 비율은 26.5%(지난해 3월 기준)로 낮았다. 빚이 자산을 웃도는 가구는 0.6%에 불과했다.

 다만 유동성을 감안한 금융자산만으로 따진 보증금 반환 능력은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3월부터 6년간 임대가구의 연평균 금융자산 상승률(3.2%)이 전세보증금 상승률(5.2%)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부채를 보유한 임대가구(134만 가구)의 경우 금융자산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이 91.6%까지 상승했다. 전세보증금과 금융부채의 합은 금융자산의 133.5%나 됐다.

 한국은행은 “임대가구의 재무상황과 보증금 반환능력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데다 전세자금대출도 우량차주 비중이 높아 대출 부실 가능성이 낮지만 격 하락폭이 크거나 부채 수준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국내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9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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