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내내 태극기 날리는 항일 거점…소안도 주민들은 ‘불령선인’ 낙인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이던 완도 소안도. [프리랜서 장정필]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이던 완도 소안도. [프리랜서 장정필]

‘일제강점기 당시 섬 주민 6000명 중 800명이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낙인이 찍힌 채 감옥에 갇히거나 감시를 받았다.’

3·1운동 100주년 맞아 주목 #15일 항일의식 기려 만세 재현

1927년 5월 10일 강제 폐쇄된 전남 완도군 소안도 소안학교의 역사를 다룬 당시 언론보도 내용이다. 일제는 당시 항일운동의 거점이라는 이유로 소안학교를 폐교했다. 주민들은 학교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섰다가 ‘불령선인’이 됐다. 불령선인은 일제에 반발하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을 말한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 거점이던 작은 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내내 격렬하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된 완도 소안도다.

완도에서 18㎞ 떨어진 소안도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광복 때까지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당사도 등대 습격(1909년)과 완도 3·1운동 주도(1919년), 소안학교 투쟁(1927년) 등이 대표적이다. 소안도는 1년 내내 섬 전역에 태극기가 나부낀다는 점이다. 태극기는 섬 입구인 소안항을 시작으로 도로와 거리, 마을·상가 일대에 1500여개가 걸려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사진)을 중심으로 섬 전역에 휘날리는 태극기들에는 100년 전 3월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이 섬에서는 3·1운동보다 10년 먼저 무장 항일운동이 시작됐다. 1909년 2월 소안 출신 동학군 이준하 선생과 마을 청년 5명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한 사건을 통해서다. 일본이 만든 당사도 등대는 조선에서 수탈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일본 상선의 뱃길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 등대를 지키던 일본인 4명을 처단함으로써 항일의지에 불을 댕겼다. 당사도는 직선거리로 3.7㎞ 떨어진 소안도의 부속 섬이다.

10년 뒤 3·1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또다시 일어섰다. 당시 소안도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3월 15일 완도읍 장날에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 14일 동안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한 결과다. 당시 1000여 명이 참여한 3·15 만세운동은 남해안 일대의 항일의지를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완도군에서는 올해도 100년 전 소안도민들의 항일의식을 기리기 위해 오는 15일 만세운동을 연다. 이대욱(65)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은 “태극기 게양과 무궁화 심기 등을 적극 전개함으로써 소안도의 항일 역사를 전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