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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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들러오는 쿵쿵 소리는 절망을 알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도 같았다. 왠지 사람들은 그런 불길한 예감들을 갖고 있었다. 39년전 6·25 동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꼬박 3년간 계속된 전쟁은 혈전의 연속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유엔측의 사상자는 무려 33만명에 달했고 공산측은 그 4배나 되는 1백30만명이 살상되었다. 2O만명의 전쟁 미망인, 10만명의 전쟁고아, 60만채의 건물파괴, 공업 시설의 45% 파손.
사보는 전화가 지나간 자리를「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나라는 망가졌으나 산과 강은 그대로 남아있네/ 봄이 온 성벽엔 초목만 무성하다)이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의 산하는 깨어지고 부서져 황폐와 초토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서지고 무너진 것은 산과 강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도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1천만명의 사람들이 남북으로 나뉘어 가족을 잃고 살며, 내왕은 고사하고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인간 부재의 단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사가들은 한국동란을 제1차 세계대전의 규모와 비교하고 있다. 우선 유엔측의 1백50억달러라는 엄청난 전비 지출이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 동란의 내면엔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비극과 상처가 남아 있다. 남북은 곁으로는 만나 서로 손잡고 웃지만 속으로는 증오와 불신의 감정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숨김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 지구상에 그런 관계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철천지 원수가 되었던 나라들도 지금은 모두들 친구가 되었다. 불과 10여년전 총부리를 맞대고 죽기 살기로 싸웠던 베트남과 우리 사이도 가까운 친구는 아니지만 미워하는 사이는 결코 아니다. 두 나라는 교역도 하고 내왕도 하는 관계가 되었다.
우리의 남북은 남남이 아닌 서로 동족이 아닌가. 실로 우리는 이상한 땅 위에서 실로 이상한 체험을 하고 있다. 해마다 이 무렵 6·25가 되면 39년 전 피묻은 낡은 필름을 되돌리며 그때의 증악감을 다시 일깨워야 하고, 그때의 절망과 아픔을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어디에고 평화는 오지 않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국민은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 6·25는 이제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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