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술 거부할 수 있다" 진술거부권, 체포 시 고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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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이미지. [중앙포토]

수갑 이미지. [중앙포토]

긴 추격전 끝에 경찰이 범인을 붙잡아 수갑을 채운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범인에게 또박또박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걸 잊지 않는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다.” 범죄를 다룬 국내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면은 실제 경찰의 체포 원칙과는 조금 다르다. 국내 경찰은 체포 직후에는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체포시 범죄사실 요지, 체포 이유, 변호사 선임권, 변명할 기회, 체포구속적부심사 청구권(체포, 구금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법원에 심사를 청구하는 것)을 고지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묵비권’이라 불리는 진술 거부권은 빠져 있다. 진술 거부권은 체포 시가 아닌 피의자 신문 전에 고지하도록 규정돼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체포 직후가 아니라 경찰서 등으로 이송된 뒤 신문을 앞두고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앞으로 피의자를 체포할 때부터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오는 12일부터 피의자 신문 직전 고지했던 진술거부권을 체포 시 고지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미란다원칙은 1966년 6월 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확립된 ‘피의자 방어권’의 교본 같은 원칙이다. 수사기관이 용의자를 연행할 때 체포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진술을 거부할 권리 등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은 일선 수사관들에게 미란다 경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국내에서도 형사소송법에 따라 체포 시 고지해야하는 항목들이 정해졌지만, 진술거부권은 여기에 빠져 있었다. 체포 뒤 후송 과정에서 경찰이 피의자에게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받는 상황이 더러 있기 때문에 진술거부권을 미국처럼 신문 전이 아닌 체포 직후 고지해야한다는 여론이 일각에서 일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 중 상당수가 체포 직후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 뿐더러, 체포됐다는 압박감이나 심리적 위축까지 더해져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인권을 보호하고,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하는 절차를 확립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형사소송법 개정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내부 지침으로 진술 거부권을 미리 고지하도록 했다. 경찰 관계자는 “권리고지에 대한 확인서 양식을 만들어 피의자가 신문 전 서면으로 재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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