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타결보다 「시국대담」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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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과 3야당총재들간의 개별영수회담이 31일 노-김영삼 회담부터 시작된다.
시기적으로 4당 중진회의에 잇달아 열려 이번 영수회담이 중진회의의 미결사항을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쏠려있으나 4자의 입지나 시국 상황으로 봐 구체적 문제해결 보다는 여야지도자들이 시국대담을 갖는다는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번 청와대 회담에서 대통령과 야당지도자들이 난마와 같이 뒤엉킨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 주리라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여소야대의 새 경험과 전환기의 격동하는 사회분위기가 4명의 지도자에게 1년 전과는 어떤 다른 시국관을 갖게 했으며 그것이 앞으로의 정국전개와 운용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 본다는 차원에서 이번 영수회담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은 3김 총재에 비해 다소 강화된 입장에서, 그리고 좀더 소신 있는 시국인식으로 영수회담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은 지난1년간 대통령이 여론을 리드는 못했지만 큰 흐름에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무력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결정적 비토그룹(거부세력)을 만들지 않았으며 3김 총재에게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실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한 단계 진전된 정치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3김 총재 역시 노 대통령에 대해「참을 수 없는」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이번 영수회담을 사안별로 주고받는 협상으로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미 당략적 절충은 중진회의에서 마무리 된 것으로 보고 영수회담은 국가와 체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상호신뢰구축을 도모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3김 총재간의 미묘한 입장차이를 무시하거나 그들의 현안처리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충분히 경청하고 설득은 하되 5공핵심 인사처리 등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쟁점은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폭력·파괴·사회안정에 공동대처하자는 제의와 아울러 좌경·노사· 학원·교원노조·신도시건설 등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인사 처리 등 5공 청산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특정인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고 정 안되면 문제를 싸안고 가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노 대통의 이 같은 기조에 대해 3김 총재는 각기 다른 이해척도와 접근방법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만나는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주요관심사는 자신의 방소 의의를 최대한 부각시켜 동해사건·중평을 둘러싼 정국오판으로 인해 실추된 인기를 만회하는 기회로 활용하는데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김영삼 총재의 방소는 김대중씨와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 뚫었다는 점에서 부각시켜 보고자하는 대목이다. 그 동안 정부측으로부터 3부 장관 합동 브리핑을 받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노 대통령의 대소메시지 전달을 자임할 대세까지 되어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도 공산권에 대한 야당 총재의 초당외교는 적극 권장 할 만한 일이고 소련을 다녀온 후 국제관계·북방외교. 한국에 대한 외국의 평가 등에 있어 김영삼 총재의 시각이 조정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 같은 명분에 곁들여 김영삼 총재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서석재 전 사무총장의 석방을 부탁하고 새로운 대노제휴를 모색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에 계류중인 서 의원 건에 관해 당장 노 대통령으로부터 확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5공청산등에 관해 김 총재가 과감한 양보나 신축성을 보이면 다소 시차가 있더라도 호혜적 반응을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역시 노 대통령에게 까다로운 회담상대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일 것 같다. 5공 청산의 가장 큰 잠재 요인인 정호용 의원처리를 그가 가장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총재가 정 의원 문제에 극적인 양보를 하거나 타협에 응할 가능성은 무척 적어 보인다. 지지기반인 광주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김 총재로서는『정 의원 처벌 없는 5공청산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이 한결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총재는 광주를 의식하는 것 못지 않게 문제의 해결능력을 보이는「전국적 정치가」의 면모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철규 군 사건에서 보았듯이 광주를 앞세운 일방적 민주화선전에는 이제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대중 총재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의지, 문익환 목사사건처리와 공안 합수부의 활동 등에 관해 대통령의 확답을 요구하고, 안기부법·보안법 등 계류중인 현안의 매듭에 보다 더 집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자기 당 소속 국회의원 출신구인분당·일산신도시건설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5공 청산·정호용 씨 처리 (장기외유) 등에 있어「상담역」의 입장에서 회담에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노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고 좌경·북방정책에서는 보수적 시각의 훈수도 겸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국운영방안에 관해 가장 깊이 있고 알맹이 있는 논의가 될지도 모르며 김종필 총재가 내각제개헌문제를 본격거론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개별영수회담은 합의·결정보다는 해명·설명이 주가 되는 모임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중진회담이 지자제 등 기대 밖의 성과를 올렸듯이 대화·타협정치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인식이 잘 합치되면 망 외의 작품이 나올 개연성은 항상 있다.<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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