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TK 곳간지기 대구은행, 10개월 은행장 공석 결국 지주회장으로 채운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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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29일 오후 4시 취임식을 통해 대구은행장을 겸직하게 된다. [사진 대구은행]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29일 오후 4시 취임식을 통해 대구은행장을 겸직하게 된다. [사진 대구은행]

"권력 집중을 막겠다"며 지주 회장과 은행장 분리를 천명했던 대구은행과 DGB금융지주가 결국 김태오(65) 지주 회장을 은행장으로 뽑았다. 대구은행 측은 "적임자가 없었다"고 하지만 일부 노조는 "김 회장이 겸직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신임 행장 취임식은 29일 오후 대구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DGB금융지주 이사회는 "채용 비리, 비자금 조성 등에 연루된 전·현직 임원이 많아 마땅한 대구은행장 후보자를 찾기 어려웠다"며 "조직 안정을 위해서 김 회장의 한시적 겸직을 최선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DG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구성된 자회사 최고경영자 추천후보위원회는 지난 11일 김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추천했다. 대구은행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후보 추천위원회는 지난 18일 김 회장의 은행장 겸직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날 오전 열린 대구은행 주주총회에서 김태오(65) DGB금융지주 회장의 대구은행장 겸직이 최종 결정됐다.

2017년 기준 숫자로 보는 대구은행. [중앙포토]

2017년 기준 숫자로 보는 대구은행. [중앙포토]

대구은행장 자리는 지난해 4월부터 비어있었다.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사퇴해서다. 박 전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4년 4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상품권 판매소에서 수수료 5%를 제하고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조사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과 공모해 점수조작 등의 방법으로 은행에 24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도 적용됐다. 박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대구지법에서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역 50여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구은행 박인규 행장 구속 및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3월 23일 오전 DGB금융지주 주주총회가 열리는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은행 제2본점 다목적홀 앞에서 주주총회에 임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시민대책위 일부는 DGB금융 소액주주 등의 권한을 위임받아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뉴스1]

지역 50여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구은행 박인규 행장 구속 및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3월 23일 오전 DGB금융지주 주주총회가 열리는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은행 제2본점 다목적홀 앞에서 주주총회에 임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시민대책위 일부는 DGB금융 소액주주 등의 권한을 위임받아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뉴스1]

각종 비리로 지역 대표 은행인 대구은행의 이미지가 추락하자 대구은행 부패청산시민대책위원회 등 지역사회에서는 "지주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하면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돼 견제가 어렵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5월 김 회장이 DGB금융지주의 새 수장으로 들어오면서 DGB금융지주 이사회, 대구은행 이사회는 "지주와 은행의 최고경영자를 분리해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구은행 본점 야경. [사진 대구은행]

대구은행 본점 야경. [사진 대구은행]

하지만 10개월간 지주와 은행은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은행에서 추천한 후보자 2명을 포함한 6~8명의 자질을 심의했으나 탈락했고, 김 회장이 겸직하면서 시간을 두고 은행장 후보를 물색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은행장을 지낸다.

노조, 지역사회의 반발은 거셌다. 대구은행 부패청산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차라리 행장 후보를 외부에 개방해 적임자를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대구은행 노조(은행 제2노조) 측도 "김 회장의 겸직에 찬성한 은행 이사들은 사퇴하고 김 회장은 겸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장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 될 우려가 커지자 일부 노조 측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대구은행지부(은행 제1노조)는 "김 회장이 은행장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내부 혁신 등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며 겸직을 수용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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