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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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86년 3월 북한에서 탈출,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신상옥·최은희씨 부부가 오는 23일 일시 귀국하는가 보다. 지난 78년 홍콩에서 6개월 사이를 두고 실종 된지 꼭 11년만의 일이다.
신씨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영화제작 활동 재개여부를 타진할 모양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미국에서 2편의 영화 제작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중 한 편은 민비를 소재로 한『마지막 황후』라는 말도 들린다.
신씨가 영화를 만든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얘기만큼 드러매틱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문체점이 따른다.
우선 영화제목부터 한번 생각해 보자. 그는 동기야 어찌됐든 남과 북을 갔다 왔다 했다. 그래서 손쉬운 대로 『남과 북』이라고 한번 붙여보자.
하지만 그는 무슨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북으로 납치된 이혼한 부인을 찾아 나섰다가 자신도 그런 꼴을 당했다. 물론 이 대목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북에서의 행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그에겐 그런 거창한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 관객의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
그러면 실종된 정인을 찾아 나선 한 사나이의 사랑과 집념을 그린 애정물로 제목을 잡아보자. 그래도 어딘가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그 여인과 이혼한 처지에 있었고, 그 이혼의 동기가 바로 새로운 젊은 여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애의 주인공이 되기에도 글렀다.
그렇다면 한가지 제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풍운아』다.
과거 영화계에서는 신씨를 가리켜 곧잘 「바람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고 했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사생활의 스캔들 말고도 영화제작 관계의 잡음으로 법정 구속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검열에서 삭제된 음란한 장면을 예고편에 삽입, 상영한 것이 문제가 되어 영화사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가 우리 영화사에서 기억 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같은 작품을 남긴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구름 같고 바람 같은 행적은 더욱 석연치 못한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영화의 소재로도 실패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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