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주장,저런하소연] 실종된 예체능교육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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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돈 많~이 들겠다."

누가 아이 전공을 물어 '예술'이라고 하면 대뜸 던지는 말이다.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조차 "재능이 있구나" 내지 "하고 싶은 공부 해서 좋겠다"는 격려를 해주는 사람은 열에 한 두 명 정도다. 예전부터 서서히 망하고 싶으면 자녀에게 예능을 가르치라 했다.

아는 언니는 평범한 회사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였다. 아이가 걸을 무렵부터 바이올린 채만 붙잡고 다닐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주위에선 '제2의 정경화'가 탄생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레슨비를 마련하느라 가세는 기울었다. 우선 살던 아파트를 전세 놓고 작은 평수로 옮기더니 몇 년 후엔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이던 아파트를 처분해야 했다. 그 후 전셋집을 전전하다 결국 월셋방으로 이사했다. 뒷바라지가 너무 힘들어 아이에게 그만 음악을 포기하고 소고기 한번 먹자고 한 적도 있었단다. 그 아이는 예고 입시에 고배를 마시고 결국 고2 때 스스로 꿈을 꺾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집을 보며 예능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주 부자 아니면 턱없이 간 큰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4월 중앙 음악 콩쿠르 작곡부문 1위에 입상한 김택수씨. 기사를 통해 접한 그의 사연 역시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탁월한 재능과 노력으로 정상에 우뚝 섰지만 학창 시절 악기 살 돈이 없어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포기해야 했고 오랜 시간 다른 길을 돌았어야 했단다.

아이가 4~5학년 정도까지 예체능에 관심을 보이면 계속 시킬까, 그냥 취미로 그칠까를 고민하게 된다. 전공을 하려면 도구나 악기부터 달라져야 하고 레슨 역시 취미일 때와는 천지차이다.

3년 전쯤 영재학교 설립에 관한 계획이 발표됐다. 2006년도부터 영재를 수학.과학.언어.예술 영역으로 확대 선발하고, 그 기준을 재능과 흥미 등 적성에 두겠다는 내용이다. 조만간 영재들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겠구나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안이나 후속 실천이 따르지 않고 있다. 예술교육을 시키는 부모는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기분이 수도 없이 든다. 안으로는 아이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덜어줄 수 없어 안타깝고, 밖으로는 황무지를 혼자 개척해 가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다. 정부의 '21세기는 문화 예술의 시대'라는 말은 비바람 속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격려의 박수 보내줄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위정숙(42·주부·서울 중랑구 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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