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교양강좌」단속 싸고 마찰 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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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야 운동권 단체들이 사회 민주화·민중 교육 운동의 일환으로 각종 교양강좌를 잇따라 개설하자 시·도교위 등 당국이 불법강습소라는 이유로 폐쇄 또는 고발을 통보하고 나서 재야·당국간 마찰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시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민중교육 운동」은 그동안 운동권 내부에서『제도교육은 지배층 외 이데올로기·반공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분단교육」,「공동체파괴 교육」이었다』는 비판에 따라 사회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운동권· 재야의 시각에 대해 교육계 및 당국은『민중교육은 학생·시민들에게 편협한 이데올로기와 극단적인 운동권 논리를 주입시키거나 심할 경우 좌경·용공성향을 고무시킬 우려가 있다』며 강력 저지 방침을 밝혀 심각한 마찰이 예상되는 것이다.
◇민중교육 실태=현재 실시되고 있는 시민교양 강좌는 서울에서만 30여 곳에 이르는 등 전국적으로 70여 곳에 달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민족연합(의장 이재오)이 지난달 20일 개설한 민족학교. 3월10일까지 계속되며 현재 제9기 강좌를 열고 있다.
서민련은 이외에 「민족 문화교실」(제5기), 「정치경제학 교실 (제2기),「철학교실」(제2기)을 각각 마쳤거나 현재 개설 중이다.
서민련은 또 이와는 별도로 겨울 방학동안 고교생을 대상으로 고교 졸업생을 위한「민족 민주 교실」을 개설, 지난 20일 교육을 마쳤다.
서민련 외에도 서울지역 사범대 학생회연합의「자주 학교」,사회민주주의 청년 연맹의 「정치학교」등이 있으며 특히「자주학교」와 나라사랑 청년회의「고3 졸업생을 위한 청년 한마당」등 4∼5개 강좌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고있다.
이러한 시민교양 강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80년「민중 교육지」사건이 난 후 재야 운동권에서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일기 시작한 뒤 80년 서민련「민족학교」 가 개설된 때 부터다.
◇교육내용=민중교육의 내용은 전통풍물·사물놀이에서부터 반핵·공해·여성문제 등 의식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강좌는 보통 1주2회 정도로 열리며 그 기간도 1주일에서부터 4주까지 있으며, 교육방법은 강연과 토론, 비디오 관람, 공동체 놀이와 함께 노래부르기 등 수강생과 호흡을 함께 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20∼30대의 사무직원, 학생들이지만 주부와 노인도 참석하는 등 직업·계층이 점차 폭넓어지고 있다.
◇시각차이=재야·운동권에서는 시민 교양 강좌를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참 일꾼·참 시민층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민중이 민족의 실체와 역사의 주체임을 확인케 하는 민중교육 운동』이라고 보고있다.
따라서 재야·운동권은『시민교양 강좌가 제도 교육의 모순을 바로잡을 대안』이라고 주장, 궁극적으로는 민족 대학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모색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확산 일로에 있는 시민교양 강좌 등은 좌경세력의 온상으로서 방치될 경우 의식화로 인해 민주체제까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정부가 지난20일 사민청이 개설한 진보이념 강좌인「정치학교」에 대해 폐쇄령을 내리고 서민련의「민족학교」와 민청련의「청년학교」에 대해서 실태조사 후 페쇄령을 내린 것도 바로 이같은 우려 때문이다.
서울시경도 지난달 연세대에서 열린 서사협 주최의「자주 학교」참가고교생 14명에 대해 강좌내용의 좌경여부 등을 가리기 위한 조사를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종석 치안 본부장도 21일 국회내무위에서「대학생 및 재야가 민족학교·정치학교 등을 운영, 청소년·고교생 등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분석,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의법조치 하겠다』고 밝힘으로써「민중교육 운동」에 쐐기를 박을 뜻을 분명히 했다.
한편 서민련 등 재야 10개 민중 교육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측 움직임에 대항,「서울지역 민중 교육운동 탄압 공동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시교위의 폐쇄명령 등은 노태우 정권이 중간평가를 앞두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 기만적인 6·29선언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며 『민중교육 운동 단체들의 통합운동을 적극화해 궁극적으로 민중민주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혀 봄철 투쟁을 계획하고 있는 학원가·재야에 마찰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김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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