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환자 실어나르다 관절염 걸린 소방관…“공무상 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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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구조활동으로 관절염 악화…“일 때문에”

조난자를 들것에 실어 헬기로 후송하는 훈련을 하는 소방 구조대원들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조난자를 들것에 실어 헬기로 후송하는 훈련을 하는 소방 구조대원들의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18년차 소방관 김모(42)씨는 주로 현장에서 환자를 구조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그중에는 산을 타다가 다친 등산객들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하는 업무도 포함됐다. 4년 전 전남 지역 소방서로 발령받은 뒤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평소 무릎 통증을 앓고 있던 김씨는 야산으로 출동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다. 그는 동료들에게 종종 ”무릎이 아프다“며 호소하곤 했다.

지난해 4월, 무릎 통증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찾은 김씨는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소방관으로서 직업 활동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김씨는 “지난 몇 년간 산에서 들것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무릎에 지속적인 하중이 가해져 관절염이 생겼다”며 "공무에 따른 부상이니 쉬는 동안에도 급여를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김씨가 과거 13년 전 수술받았던 무릎 부위가 자연적으로 악화돼 관절염으로 진행됐을 뿐”이라며 거절했다. 김씨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이는 1년 가까이 이어졌다.

법원 “기존 질병 있더라도 급격히 악화됐다면 공무상 질병”

지난달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하석찬 판사는 “공무원연금공단이 김씨의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 판사는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공무와 직접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직무상의 과로 등이 겹쳐 질병을 유발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기존에 있던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된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 로드뷰]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 로드뷰]

하 판사는 “김씨가 3년 동안 총 7번 야산에서 구급업무를 수행했는데, 모두 무릎 부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으며 김씨가 그 때마다 통증을 호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김씨가 전남 지역으로 관할을 옮기면서 더 과중한 업무를 맡았던 상황도 고려됐다.

또 다른 의료 전문가도 재판에 나와 “구급 및 구조 활동은 평균적인 활동량의 사람들보다 무릎 수술 부위를 조금 더 악화시켜 관절염을 유발하거나 자연적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다. 특히 김씨가 이전까지는 산을 내려올 때만 통증을 느꼈던 반면 지난해부터는 오르막길에서조차 무릎이 아파왔던 점을 볼 때, 최근 몇 년 간 관절염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봤다.

하 판사는 무릎 수술 후유증이 관절염으로 번지기까지 통상 15년~30년이 걸린다는 점도 주목했다. 하 판사는 “김씨가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 수술을 받은지 약 13년이 지난 시기이므로 평균적인 시기보다 이르다”며 “결국 구조 업무로 인해 김씨의 관절염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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