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아이 입양한 재미 이현호 목사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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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아들 진석이를 안고 있는 이현호 목사와 부인 김성덕씨. 앞줄은 딸 하늘(왼쪽)과 아들 반석.

'아내가 진석(영어이름은 엔젤)이를 데리고 한인 타운에 갔다가 '남편이 흑인인가 보다'며 손가락질을 받으면 어떡할까. 우리 가족이 주변 사람들, 특히 한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잘 견뎌낼 수는 있을 것인가.'

미국 뉴저지의 새누리교회 이현호(38) 목사는 지난해 말 생후 2개월 된 흑인 아들 진석이를 입양한 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인종 간 벽을 허물어보자는 생각에서 아내 김성덕(35)씨와 상의 끝에 입양을 결정했지만 막상 입양을 하고 나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겨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한인 타운에 나가면 으레 우리 부부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을 경험했어요. 어떤 이들은 아예 대놓고 묻죠. 왜 하필이면 흑인 아들이냐고요. 이왕이면 한인이나 백인을 입양하지 그랬냐고요. 과연 이 아이가 자라서 한인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등등의 말을 수도 없이 들었어요."

이 목사는 특히 한인들이 용기를 주기보다 한결같이 힘 빠지는 소리만 하는 것을 보고는 한동안 의기소침했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 그는 타민족 입양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한인 사회 특히 만연해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고민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낮 시간에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진석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퉁퉁 불은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목사이기 이전에 그저 평범한 한 아이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이 목사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브롱스 캄보디아 교회 청소년부를 맡으면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타민족과 생활할 기회가 많아 타 인종에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맨해튼의 한 입양센터를 통해 진석이를 입양한 그는 "센터 관계자들이 '지금까지 아시아계 부모가 흑인 아이를 입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무척이나 까다로운 신원조회 과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입양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내 가정에서 인종화합을 실천하기 위해 진석이를 입양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거창한 생각보다 이제 막 7개월을 넘긴 막내 아들 진석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똘망똘망한 눈, 시원스런 입, 누가 봐도 호감이 가는 진석이가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입양은 축복이자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뉴저지 새누리교회에서 한인과 아시아계.히스패닉계 출신 청소년들로 구성된 다민족 청소년부를 이끌며 청소년 사역을 맡고 있는 이 목사는 "진석이가 씩씩하게 자라 인종 간 벽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 목사는 진석이 외에 아들 반석(8)과 딸 하늘(6)을 두고 있다.

뉴욕지사=임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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