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의 손발은 맞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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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북한과의 금강산 공동개발 합의를 하이라이트로 해서 남북관계가 급진전을 보이고 대 공산권과의 교류·교섭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 이후「10월께 남북 정상회담 실현을 위한 동남아 막후접촉」이 보도되는가 하면 북한의 누구 서울초청 설, 남북 누구의 월말 판문점회담 설 등이 잇따라 나오고, 또 부인되곤 한다.
자고 나면 또 어떤 충격적인 뉴스가 터질지 가슴 설렐 정도로 무엇인가 남북한간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적대감과 증오로 굳었던 40여년 분단의 벽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해빙의 코스로 들어서는 것 같은 정세변화에 가슴 뿌듯한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구체적인 결과가 하루빨리 하나씩 가시화 할 것을 대망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이런 남북관계의 국면전환을 정부가 적극 주도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데 대해서도 지극히 바람직한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 대북한·대북방 정책에 있어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도대체 이런 일을 누가 어떻게 주도하고 그 추진계획의 작성과정에 튼튼한 정부안의 합의나 정치권의 뒷받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주영 씨의 방북에 대해 총리실에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가장 내용을 잘 알고 선후책을 강구해야 할 입장인 외무부나 통일원에서도 보도된 내용 외에는 아는 게 없다고 한다. 외무장관이 정 회장의 방북결과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관계기관과에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정 회장의 방북합의사항은 정부와의 사전협의 끝에 나온 것이며 그 결과를 정부가 수용, 추진할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렇다면 총리실이나 주무기관인 외무부·통일원도 모르는 정부결정은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으로 이뤄진 것인가.
이런 현상들은 한마디로 말해 막중한 대북교섭을 추진함에 있어 정부안에서도 손발을 맞추고 지혜를 결집하는 노력이 없었거나 손발이 잘 안 맞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로 미루어 정회장의 방북뿐 아니라「동남아 막후접촉」이나 판문점회담 계획 등 일련의 사항도 충분한 정부 내 사전협의 끝에 나온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부가 남북관계의 빠른 진전을 추진하면서 비밀리에 제한된 극소수의 인사들만이 협의, 검토하고 교섭하는 것은 외교기술상 불가피한 일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극히 엄밀하게 안보에 부치더라도 관계기관의 광범하고도 면밀한 전문적인 사전검토와 협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 공산권외교의 막중한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런 일을 어느 개인의「밀실외교」에 의한 독주나 독단에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경우 정부안의 손발 맞추기도 제대로 안된 듯 보이는 것은 국민을 불안케 하는 우려스런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중대한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정치권과는 사전협의는 못하더라도 사후설명과 협의과정은 있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런 노력은 볼 수 없다. 벌써 야당 쪽에서는 대북교섭이 정부의 독점물이냐는 비난이 나오고「밀실외교」를 문제삼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지적과 우려에 대해 정부는 무엇인가 답변을 해야 하며 모처럼의 큰 일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을 갖게 하거나 만의 하나 결과적으로 좌절감을 갖게 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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