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은 중·러와 신냉전 가는데 우리만 무장해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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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냉전이 부활되는 불길한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87년 미·소 간에 체결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INF는 사거리 500~5500㎞인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한다. 조약에 따라 미·소가 2692기의 미사일을 폐기해 냉전 해체의 첫발을 디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겠다고 나섰다.

이유론 우선 러시아를 거론했다. 트럼프는 “모스크바가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유럽 전역을 위협할 수 있는 SSC-8 순항미사일을 배치한 데 따른 반발이다. 트럼프는 중국도 비난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새 협정에 합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해당 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소 합의에서 빠졌던 중국이 아무 제한 없이 중거리 미사일을 발전시켜 왔는데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미국과 중·러 간의 힘겨루기가 이제 핵 군비 경쟁을 수반한 신냉전으로 돌입할 우려가 커졌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세계 안보구도가 새로운 힘의 균형을 찾아 요동칠 게 뻔하다. 이는 북핵 해결에 적신호다. 미국의 핵 군비 강화가 북한엔 비핵화 거부의 핑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로 지구촌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구조를 해체하겠다는 정부의 노력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세계 안보질서의 재편이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우리로선 안보부터 챙기는 작업이 절실하다. 한데 최근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우리 군이 서북도서에서의 해상 포 사격 훈련을 할 수 없어 내륙의 산을 훈련장으로 찾고 있다는 소식은 심히 걱정스럽다. 평화의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는데 들고 있던 무기부터 내려놓으면 되겠나. 두 눈 부릅뜨고 강대국이 펼치는 신냉전 기류를 살피며 우리 안보의 앞길을 굳건히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