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덜었다" 9경기 만의 홈런 이승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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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록 수립을 눈앞에 두고도 8경기째 홈런을 치지 못한 이승엽의 스트레스는 대단했던 것 같다.

이승엽은 두번째 타석에서 검은색과 연갈색 방망이 두개를 들고 대기 타석에 나와 어떤 것을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연갈색 방망이를 골라 타석으로 나갔다. 방망이 색깔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그렇게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이 쓰일 정도로 그는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승엽은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홈런이 나왔으니 이제 좋아질 것이다. 이 홈런이 부진을 털어내는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떨떠름한 표정은 남아 있었다.

"아직 밸런스가 완벽하지는 않다. 이번 홈런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 상대 투수의 실투인데도 풀스윙을 하지 못했다. 스윙하면서 한 손을 놓쳤고 그리 잘 맞은 것도 아니었다. 바람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뒤 "그래도 타이밍은 좋았다. 펜스를 살짝 넘어가도 홈런은 홈런이다. 이 홈런으로 부담을 덜고 기분도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위안했다. 이제는 10경기에서 홈런 두 개만 치면 되니 한결 부담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22일 쉬고 23일부터 광주에서 원정 4연전을 치른다. 광주구장은 이승엽이 홈런을 치기에 불리할 게 없는 구장이다. 이승엽은 "광주구장에서는 유난히 공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올시즌 기아전에서 타율 0.353에 홈런 11개를 쳤다.

지난 시즌 심정수와의 홈런 대결에 마침표를 찍은 47호 홈런을 친 곳이 광주고, 1999년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54호 홈런을 때린 곳도 광주다.

이승엽은 "99년 광주에서 강태원 선배에게 친 홈런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이승엽의 아시아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승엽의 부진이 계속되자 부인이 "투수들이 바깥쪽으로만 승부하니 밀어서 치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부인 얘기대로 밀어친 덕분에 홈런이 됐느냐"고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이승엽은 "밀어 치라고 충고해 준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느냐"며 "오늘은 집사람이 '파이팅'이라고 응원만 했다"고 말했다.

소문난 애처가인 그는 "경기가 없는 내일(22일)은 집에서 집사람과 함께 푹 쉬겠다"고 말했다.

대구=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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