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련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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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야운동 세력이「전민련」으로 재출발한 것을 계기로 운동양식이나 목표추구에 있어 한 단계 성숙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면서 아울러 기존정치권과도 보다 개선된 관계 설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지금껏 재야세력은 집권을 추구하거나 정당형태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실체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간주되고, 그 영향력도 컸다. 특히 지난 반 유신·반 5공 민주화 투쟁에 있어 이들은 커다란 기여를 하고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나쁜 권력에 대한 저항과 제도권에 대한 감시·견제, 소외계층의 권익대변과 인권운동 등에서 재야세력은 크게 헌신해 왔다.
그리고 이런 재야의 역할과 기여 가 오늘에 와서도 불필요하게 됐다고 할 수 없는 만큼 이들에 걸린 국민의 기대도 여전히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바뀐 만큼 재야의 행동양식이나 운동방법에도 변화가 와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과거 독재하에서는 투쟁의 강도가 높을수록 높은 도덕성을 인정받고 국민지지도 그만큼 컸었다. 비록 실정법을 어기고 폭력성을 띠더라도 투쟁의 정당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지난 양대 선거를 치른 후의상황은 달라졌다고 본다. 전민련은 그 결성선언에서 현정권을 여전히 군사독재로 규정했지만 많은 국민이 그렇게 보지 않음은 전민련 관계자들도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소 야 대의 정계판도나 부정할 수 없는 민주화대세의 흐름, 사회 제요소의 역량신장 등을 생각하면 상황은 변한 게 분명하고 달라진 상황은 달라진 행동양식을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전민련 관계자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우리는 간곡히 당부한다.
오늘의 상황은 과거와 달리 점진적·단계적 목표추구와 평화적·비폭력적 운동방식을 요구한다고 본다.
과격한 목표추구나 화염병·파괴·점거와 같은 운동방식이 국민의 냉담한 반응밖에 가져오지 못함은 지난 1년간 여러 번 경험한 바다. 이제는 강 경·과 격이 더 정당한 것이 아니며 그런 방식의 효율성은 지극히 의심스럽다. 각종 과격시위에 넌덜머리를 내는 상류층 아닌 서민층이 다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전민련결성을 계기로 재야운동의 내부 응집력을 좀더 강화하라는 것이다. 다양다기 한 각종 운동세력의 연합체성격인 전민련이 통일된 노선과 운동방식을 산하 단체에 강요하긴 힘들지 모르나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 정제된 행동양식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수준은 돼야 하리라고 본다. 이런 응집력이 있어야 운동방식의 선택, 집권 측과의 교섭 등에 있어 통제력도 발휘할 수 있고 운동의 고도화·성숙 화도 기약할 수 있다.
가령 전민련이 원하지 않는데도 전민련의 집회에서 화염병이 날아오는 일은 없어야 하며 전민련이 화염병을 선택했을 경우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화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전향적 자세를 취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전민련 내부에는 반대 론이 많은 것으로 들리지만 정치활동을 언제까지고 사회운동으로 할 수는 없다.
국민적 합의의 게임 룰에 따라 정치활동을 벌이고 국민의 지지여하로 그 결과에 책임지는 정당으로 나서는 것이 떳떳한 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정당화 이전이라도 기존정치권과 좀 더 세련된 관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처럼 집권 측을 억압·피 억압 관계로만 보거나 야당을 기회주의 집단으로만 몰아서는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보·혁 구도에 관해서도 무조건 거부감만 보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정치도 어느 단계에 가서는 상호보완적인 보·혁 구도로 가야 한다는 데는 상당한 국민합의가 있다고 믿는다.
전민련 출범을 계기로 재야운동세력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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