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엔 55년 전 그 물" … DMZ서 국군 유해 첫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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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군 유해발굴반에 의해 50여 년 만에 발견된 한국군 전사자의 백골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백골은 장민호(젊은 시절 연기는 원빈)가 추억했고, 백골의 생전은 장동건이 연기했다.

현실은 영화보다 강렬하고 처참했다. 참호 속에서 쓰러진 전사자는 포탄에 맞은 듯 으깨어진 두개골과 팔.갈비.정강이.다리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전사자의 유해가 발견된 곳은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남쪽 중부전선의 비무장지대(DMZ).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대 부근 지역이다.

육군 전사자유해발굴과장인 박신한 대령은 "유해는 전방소초(GP) 보급로 확장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며 "유해 주변엔 철모, 수류탄, M1 소총 탄창, 탄띠, 대검, 탄입대, 압박붕대, 숟가락 등 유품 122점이 있었다"고 했다.

비무장지대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한국군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 122점. 왼쪽엔 8개 실탄들이 탄창 31개가, 오른쪽 아래엔 전사자의 뼈가 놓여 있다. 전사자의 유해는 한 명이지만 철모는 두 개가 발견됐다. 또 다른 전사자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육군 제공]

박 대령은 "무명용사 옆에는 수통도 있었다"며 "밀폐된 수통 속엔 전사자가 마시다 남긴 55년 된 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해가 발굴된 곳은 1951년 6월 26일~9월 21일 사이 국군 2사단 17연대와 32연대가 중공군 20군 예하 사단을 맞아 735고지를 두고 공방전을 벌인 격전지다. 육군은 유해에 대한 DNA 유전자 검사로 신원을 확인한 뒤 국립현충원에 봉안할 계획이다. 현재 전사자의 유족 1300명의 DNA가 확보돼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전영기 기자

◆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육군은 2000년부터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국군의 유해발굴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금까지 1410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DMZ에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된 게 51구, 유족까지 확인된 경우는 20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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