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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이 인도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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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인도 수도 뉴델리.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소 한 마리가 울퉁불퉁한 간선도로를 가로지른다. 차를 세우고 이 성스러운 동물이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안내원이 중얼거린다. "소는 팔자도 좋아요. 누군가 먹여주기는 하잖아요. 사람이 큰일이죠."

인도 경제는 전 세계의 관심 속에 2003년 이후 연 7~8%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성장 구조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이 보여줬던 동아시아적 성장과는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적 개발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무교육제 실시로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고, 인프라 투자의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제조업과 수출을 지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인도의 경제성장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심인 IT산업, 그리고 영어 사용국가라는 이점을 활용해 영미권으로부터 아웃소싱을 받은 서비스업이 주도한다. 제조업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동아시아 국가와는 다르다. 또 오랜 기간 유럽.미국 개발경제학의 실험장이었던 인도는 보건위생.교육.환경 등 사회개발 우선주의를 채택했다. 그래서 도로와 전력.통신.상하수도 등의 인프라 구축이나 수출을 통한 공업화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동아시아적 개발에서 사회기반시설 등의 인프라 구축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의사와 교사를 양성하더라도 학교와 병원으로 통하는 도로가 없다면 시골 농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보건시설을 만들어도 댐을 건설해 상수도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하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도로나 항만을 통해 정비된 시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확보되지 않으면 농민과 중소업자들은 돈을 벌겠다는 의욕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의욕이 있더라도 충분한 전력공급이 없다면 생산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인도인 학자 중에는 아직까지 동아시아적 개발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이 있다. 그들은 민주화가 진행된 인도에선 주민을 강제로 옮기고 환경을 파괴해 댐과 도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도 제조업과 수출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지역은 동부 연안 도시 지역뿐이고, 내륙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소득 균형의 메커니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도는 중국을 모델로 삼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인도의 '동아시아화'를 진행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공적개발원조(ODA)의 대상국을 중국에서 인도로 바꿨다.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국가는 물론,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까지 제치고 인도를 가장 많이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완공된 인도 지하철도 일본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차량 제작을 한국 기업이 맡아 한국의 지원으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인도 정부도 최근 다양한 업종의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인프라를 중시하게 됐다. 인도에 대한 직접투자는 아직 금융과 IT에 몰려있기 때문에 미국과 모리셔스(아프리카 동남쪽 인도양상의 섬나라로 조세 피난처로 널리 알려짐)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이 3위고 4위가 일본, 5위가 한국이다. 포항제철이 예정대로 인도에 투자한다면 일본 스즈키 자동차의 진출과 맞먹는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이며, 인도 자동차부품산업은 한층 활성화할 것이다.

인도가 제조업에서 '동아시아' 특유의 끈끈한 기업 내, 기업 간 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중국시장에 비견되는 인도시장의 의미는 분명 크다. 한.일 두 나라는 무역에 주력하는 중국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직접투자와 건설.인프라 수출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인도의 등장은 한.일 관계가 더 이상 동북아시아 지역 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속의 관계라는 사실을 새삼 증명하고 있다. 인도로 가는 길은 동아시아에도 있는 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