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탓” 트럼프에 中 “남 탓 말라”…“시진핑 방북엔 영향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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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무산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중국 책임론’에 사실과 다르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영향론’을 제기하자 중국 외교부가 25일 외교부 사이트를 통해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 캡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영향론’을 제기하자 중국 외교부가 25일 외교부 사이트를 통해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 캡처]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오후 “미국의 논법은 기본 사실과 다르고 무책임하다”며 “중국은 이런 주장에 엄중히 우려하며 미국에 엄정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군사 퍼레이드 참석은 파장 커” 9일 방북 신중론도 #스인훙 “중국은 트럼프 도울 의지도 능력도 없어” #환구시보 “비핵화, 무역전쟁 카드로 쓸 이유 없어”

북·미 핵 협상 답보가 중국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루 대변인은 이어 “변덕 부리지 말고 남에게 잘못을 전가하지 말라”며 “관련 각국은 정치적 해결이란 방향을 견지하고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협의하면서 상호 합리적인 우려를 고려하고 더 많은 성의와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급작스러운 방북 취소와 이른바 ‘중국 영향론’을 제기한 미국이 도리어 북·미 핵 협상을 정체시킨 책임자라는 주장이다. 중국 외교부의 논조는 지난 5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직후 보다 훨씬 과격해졌다. 당시 제기됐던 ‘중국 배후론’에 루 대변인은 “생각이 너무 많다”는 언급에 그쳤다.

중국 외교부가 비교적 신속히 입장을 밝힌 만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다음 달 방북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아직 공식 발표 전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시점은 유동적”이라고 전제한 뒤 “북·중 관계 복원을 위한 시 주석의 방북에 결정적 변수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인훙(時殷弘)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시 주석 방북의 주요 목적은 북·중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며 “북·중 관계는 상호신뢰가 희박하고 중국이 유엔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쉽게 개선이 어려운 만큼 대북 압박을 우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현재 북핵 문제에서 트럼프를 도울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덧붙였다.

리춘푸(李春福) 난카이(南開)대 교수는 “트럼프의 ‘중국 영향론’은 중국보다 북한에 대한 압박 전술”이라며 “북이 핵 신고에 나설 준비가 될 때까지 한국과 중국은 미국의 자제를 설득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시 주석의 방북 시점에 대해 리 교수는 “시 주석이 평양의 9·9절 군사 퍼레이드에 참여한다면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천안문 열병식 참석과 비슷한 파장이 예상된다”며 신중론을 내놨다.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지난주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격론 끝에 시 주석의 방북을 결정했지만, 시점은 유동적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008년 6월 17~19일 중국 국가 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부주석이 김정일 위원장과 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인민망]

지난 2008년 6월 17~19일 중국 국가 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부주석이 김정일 위원장과 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인민망]

지난 2008년 6월 17~19일 중국 국가 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부주석이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인민망]

지난 2008년 6월 17~19일 중국 국가 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부주석이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인민망]

환구시보도 25일 사설을 내고 미·중 무역 전쟁과 북핵 연계설을 반박했다. “미국이 황당한 이유를 찾아 한반도 책임을 전가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은 미국이 일으킨 무역 전쟁에 맞서고 반격할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카드로 사용할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해 동북아 지역의 경제 발전 잠재력을 더욱 바라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미국에 대해서는 “도둑이 도둑 잡으라 소리치는 격”이라며 “백악관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성의도, 한반도의 최종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어떤 준비도 없다”며 비난했다.

북·미간 핵 협상이 지연된 것은 미국의 오판 탓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자오퉁(趙通) 칭화(淸華)·카네기 국제정책센터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의도와 북한의 핵전략을 오판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다음 달 하순 뉴욕의 유엔 총회 출석을 트럼프와의 회담보다 더 큰 영예를 누릴 기회로 여길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유엔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1978년 북한 정권 수립 30주년 평양 집회를 보도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978년 9월 10일자 1면.

1978년 북한 정권 수립 30주년 평양 집회를 보도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978년 9월 10일자 1면.

다음 달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2008년 6월 17~19일 국가부주석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평양을 방문한 뒤 10년 만의 처음이며,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이후 13년만의 중국 최고 지도자의 방북이다.

특히 다음달 9일 북한의 정권 수립일에 평양을 방문한다면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부총리에 이은 일인자의 두 번째 방문이 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58년 북한 ‘국경절’ 10주년 기념 베이징 초대회와 1978년 북한의 공화국 성립 30주년 기념 평양 집회를 1면에 보도한 바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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