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핵 변곡점의 한 달, 비상등 켜고 운전대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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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9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곧 평양을 방문할 것”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면담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27 판문점 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를 1년 이내에 하자 제안하니 김 위원장이 ‘예스’라고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내용일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정상 간 대화 비공개’라는 외교 상례를 깨고 지난 5일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곧 있을 폼페이오의 4차 방북, 북한 9·9절을 계기로 거론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9월 중순께 예정된 문 대통령의 방북 등 북핵 문제가 고차 방정식이 되고 있다.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 불가 입장인 미국과 선(先) 종전선언 및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북한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북·중’ ‘미·중’ ‘남·북·중과 미’ 등의 외교전이 복잡한 구도로 펼쳐질 전망이다.

볼턴의 언급은 대북 압박용이겠지만 한편으론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 나간 게 문 대통령의 전언을 믿었기 때문이란 걸 한국과 국제사회에 주지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 고위 관료가 남북이 이달 중 개성에 개설할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해 “유엔과 미국의 제재 위반일 수 있다”고 어깃장을 놓은 것도 남북관계 속도 조절을 강조한 맥락이라 하겠다. 그러나 청와대는 “제재 위반으로 보는 건 미국 내 일부 의견으로 잘못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한 달은 비핵화 협상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중차대한 기간이다. 자욱한 안갯속에서 비상등을 켜야 할 때다. 운전대에 앉는 원칙은 분명하다. 우리가 북핵 문제의 당사자며, 비핵화 진전이 없으면 남북관계도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당당히 제기하는 것, 이것이 국제사회 불신을 해소하고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