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와 장관들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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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도대체 이게 질서와 기강이 있는 정부인가. 국가의 중대현안에 대해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이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고, 다른 쪽에선 이걸 수습하느라 허둥지둥해야 하니 말이다.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 국력을 총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고위 공직자들이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으니, 이래서야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최근 며칠 사이 벌어진 여러 해프닝은 이 정부가 국가적 난제를 수습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기자에게 이라크 파병 반대입장을 밝혔다가 보도되자 "취중에 한 얘기"라느니, "사견"이라느니 해명하기에 바빴다.

그가 발언한 시점은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은 각별히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강조한 직후였다. 정무수석이라고 개인적 견해를 가지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그 견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무수석이란 자리가 갖는 비중을 인식하지 못했고, 발언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했다는 데 있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행자부 장관 처리 문제는 어떤가. 대통령은 "재해 처리를 마무리한 뒤 사퇴하라"고 하고 장관은 '즉각 사퇴'하겠다더니, 결국엔 후임자가 내정된 상태에서 당분간 현 장관이 직무를 계속하는 기이한 절충안이 나왔다. 물러날 장관이 과연 지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자부 장관이 "위도에 대통령 별장 설립 건의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즉각 공식부인한 것도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어떻게 장관이 대통령 관련 사항을 사전협의조차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부총리는 엄청난 인명 손상과 재산피해를 몰고온 태풍 통과지역인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이런 나사 풀린 현상이 어찌 '탈 권위주의 민주정부'란 말로 변명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지금 이라크 파병과 원전수거물관리시설 건립, 쌀시장 개방에 태풍 피해 복구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하나 하나가 사회를 사분오열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 핵심인사들은 언행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