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에 사는 새가 육지보다 더 큰 뇌 가졌다 -"환경 예측 어려워 더 큰 두뇌 선택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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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케아(kea). 큰 두뇌를 가진 조류로 유명하다. [사진 존 설리번]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케아(kea). 큰 두뇌를 가진 조류로 유명하다. [사진 존 설리번]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의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딱따구리 핀치는 새로운 벌레 사냥법을 개발했다. 가뭄으로 주식인 벌레가 나무 속으로 숨어들자 선인장 가시를 도구로 써 숨어든 벌레를 사냥하는 기술을 만든 것이다.

고립된 섬에 사는 새가 육지 새보다 두뇌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페란 사욜 스페인 생태학연구소 박사는 뉴 칼레도니아와 하와이에 서식하는 까마귀 등 육지와 단절된 외딴 섬에 사는 새가 더 큰 두뇌를 가졌다는 연구 결과를 1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섬에 서식하는 조류 110종을 포함해 1930여종 1만1500여 점의 새 표본을 분석했다. 서식하는 장소에 새를 분류한 뒤 상대적인 두뇌 크기를 측정했다. 까다로운 연구 방법은 아니지만 분석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페란 사욜 박사는 “같은 조류임에도 육지가 아닌 고립된 섬에 사는 새들의 두뇌 크기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톰팃(Tomtit). "머리가 크다"는 뜻이다. [사진 존 설리번]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톰팃(Tomtit). "머리가 크다"는 뜻이다. [사진 존 설리번]

연구팀은 외딴 섬에 서식하는 새가 더 큰 두뇌를 가진 이유로 극심한 가뭄과 같은 환경변화 때문으로 추정했다. 유연한 변화에 적응하는 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사욜 박사는 “변화무쌍한 섬의 생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유연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큰 두뇌를 가진 새들이 선택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유전 계통학 분석을 통해 육지와 섬 새들의 공통 조상도 연구해 분석했다. 그 결과 육지에서 섬으로 이주한 새들의 뇌가 사후에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딱따구리 핀치처럼 새로운 벌레 사냥법을 개발한 새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사욜 박사는 “선인장 가시를 도구로 사용하는 등 정교한 진화를 이룬 새들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새 종류에 따른 분류와 섬 생활에 따른 두뇌 사이즈의 상관관계. 중간 점에 오른쪽에 치우칠수록 평균보다 두뇌 크기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 네이쳐 커뮤니케이션스]

새 종류에 따른 분류와 섬 생활에 따른 두뇌 사이즈의 상관관계. 중간 점에 오른쪽에 치우칠수록 평균보다 두뇌 크기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 네이쳐 커뮤니케이션스]

이번 연구는 섬에 사는 새들이 육지에서 건너오며 분리·독립해 독자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외딴 섬에 고립된 조류의 두뇌 발달에 대한 새로운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이전에는 생활 방식보단 음식물 섭취에 초점을 맞췄다. 섬과 육지에 서식하는 새가 서로 다른 음식물을 섭취해 성장 발달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욜 박사 연구팀은 “지리적 격리와 생활 방식 변화가 진화론 측면에서 더욱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조류가 아닌 유인원 등 일반적인 척추동물까지 확대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한다. 연구팀은 “두뇌 진화에 대한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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