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지키는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하고 소리 내어 읽는다. 자연스럽다. 네 단어를 다르게 배열해 본다. “달아 밝은 달아 달아”. 어색하다. 다른 조합 “밝은 달아 달아 달아”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달아”를 제시한 후 한 번은 지켰다가 다음에 바꾸고 다시 돌아오는 고전적 원리, 기-승-전-결의 원리 때문이다.

지킴과 나아감의 대결과 조화가 음악의 원리 #인간의 오랜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근거

그다음 네 글자씩의 조합을 보면 이 원리 혹은 힘의 작용이 더 분명해진다. “①달아 달아 ②밝은 달아 ③이태백이 ④노던 달아”는 처음에 달을 부르고, 이를 이어가고, 새로운 데로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위의 순서를 바꾸어 ①-③-④-② 혹은 ②-③-④-① 어떻게 읽어도 불편하다.

음악은 시간 위에 펼쳐진다. 지금 들리는 소리만 가지고는 음악을 파악할 수 없다. 앞에 들렸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어야 지금 소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만 나오면 기억하지 못한다. 반복이 필요한 이유다. 적당히 지킨 후에야 음악은 앞으로 나아간다. “고요한 밤”과 “거룩한 밤”은 같은 선율을 반복한다. 그 반복 후에 “어둠에”의 새로운 선율로 나아간다. 이어지는 “묻힌 밤”의 선율은 새로운 것 같지만 실은 “어둠에”의 가락을 살짝 낮춘 것이다. 말하자면 반복과 새로움이 결합된 형태다. 이렇듯 음악은 ‘앞의 것을 지키는 힘’과 ‘새롭게 나아가는 힘’의 대결 혹은 조화로서 이루어진다. ‘지킴’은 음악에 정체성을 주고 ‘나아감’은 음악에 성장을 준다.   나는 이 원리가 음악만이 아니라 시간 위에 펼쳐지는 모든 예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또 마찬가지의 힘이 조형예술을 포함한 여러 다른 예술에도 작동하리라고 믿으며, 더 용감하게는 인류의 역사도 이 두 가지 계기로 이루어졌다고 이해한다.

수천 세대 동안 같은 시도를 되풀이한 다음에 우리 조상은 돌을 깨트려 날카로운 부분을 이용할 줄 알았으리라. 얼마나 오랜 관찰 후에야 사람은 해가 가장 긴 날과 짧은 날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까? 엄청난 주의력과 눈빛의 교환과 입 모양의 조절 끝에 그리고 그 행위의 반복 끝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불” 혹은 “물”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복이 없었으면 도구도 앎도 말도 없었다. 그러나 처음 돌을 깨고, 처음 낮의 길이에 관심을 갖고, 처음 무엇인가를 말로 표현하려고 했던 그 힘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무수한 반복만큼이나 이 힘도 본성적이다. 애초에 그 두 힘은 따로 있지 않다.

음악을 들을 때, 예컨대 교향곡이나 우리 아악을 들을 때 역사가 느껴지고 인간사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은 선율의 제시, 그 선율의 반복과 성장, 그 성장 끝에 나타나는 변화와 그 변화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계기, 그 계기가 다시 반복되고 확대되면서 전개되는 새로운 지평…. 이 지킴과 나아감의 충돌과 조화로 이루어진 음의 파노라마가 인간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키는 힘’, 인간사를 움직여 온 당연한 힘의 하나가 요즈음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소위 보수 정당들이 참패를 당하고 나서다. 나는 그 정당들이 몰락했다고 해서 지키는 힘의 가치가 부정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엉뚱한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평화, 정의, 박애, 평등, 자유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오랜 가치를 지키는 대신 대결, 경쟁, 파당, 이기심 등의 전략을 더 우선하면 일시적으로는 유리할지 몰라도 결국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어쩌면 지금은 나아가는 힘이 더 강한 시대일 수도 있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는 힘이 많이 발휘된 후에는 다시 지키는 힘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이태백이” 다음에는 다시 “노던 달아”로 되돌아오지 않는가.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