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소 관계 조심스레 지켜본다|최근의 변화 워싱턴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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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한남규 특파원】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 움직임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나.
노태우 대통령은 18일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남·북한 및 미·소·중·일 6자 평화협의회의를 제의했고 동시에 한국과 소련은 무역사무소교환설치를 합의했다.
우선 노대통령의 제의와 관련, 미 정부 고위관리의 반응은 한마디로 『노 트러블 (이의가 없다)이다』 『매우 전진적이고 건전한 제의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급격한 정세변화에 대한 미국의 자세는 「노 트러블」이란 한 마디처럼 그렇게 단순 명료하지는 않다. 이점은 이 관리의 다음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북한간의 근본문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간에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지속된 입장이었다.
노대통령이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유용하고 창조적이라고 생각한다. 근본문제해결은 남·북한 당사자가 해야한다는 생각이지만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6자 회담도 지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소 무역사무소 교환설치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반도 및 동북아정세에 기여한다고 판단, 이를 수용하는 자세이다. 이 관리는 소련과 중국이 노대통령의 7·7선언을 부정적으로 보고있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미국정부는 한국정부가 중소를 상대로 모색하고 있는 다방면의 관계개선을 비록 공개적으로 큰 소리로 환영하고 나서는 자세는 취하지 않더라도 일단 이 지역 정세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면서 그 발전 속도 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부가 조심스런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지정학적변화에 대한 우려와 통상관계발전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경계로 해석된다.
최근 미국무성의 「리처드·아미티지」차관과 「개스턴·시거」 동아시아 및 태평양담당차관보는 뉴욕타임스지에 공동으로 기고,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아시아의 정치·경제문제에 대한 소련의 이니셔티브를 지적하고 『소련이 진정으로 아시아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려한다면 입장료를 지불하라』고 경고했다.
곧 소련이 군사적으로는 대규모 아시아주둔 병력을 삭감하고 베트남·북한 같은 호전적인 국가에 대한 군사지원을 자제하고 경제적으로는 소련경제의 개방 및 능률화를 선행시키려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소련이 최근 북한에 대해 SA3 및 SA5 미사일과 MIG23·SU25 및 MIG29 등 첨단병기를 제공한 사실을 지적했다.
한·소간 통상관계가 발전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가 바뀌거나 지정학적상황이 전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최소한소련의 아시아 무임승차에 대한 경고형식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상황변화에 따른 주한미군의 위치문제에 관해서도 미국은 아직까지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후보와 국무총리 등이 90년대 말이면 주한미군의 감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언명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슐츠」국무장관 등 관계자들은 철수시기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 정부 고위관리는 이 문제와 관련, 용산 주둔 미8군사령부의 이전문제는 양국간에 협의되고 있지만 『주한미군의 감축문제는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소 통상관계 확대에 관해서는 그 동안 「레이건」행정부의 권유와 환영이 공개적으로 표명돼 왔다. 안보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한반도 분위기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에도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나타니엘·태이어」미 존스홉킨스대 아시아문제 연구소장 같은 사람은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소 관계가 미국의 이익을 저해시키는 일은 정치·경제 어느 면으로도 발견되지 않으며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한국의 너무 빠른 접근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대소접근에 대해 미국 측의 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년 1월 코콤(COCOM·대 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은 한국을 비롯, 홍콩·싱가포르·대만 등 신흥공업국에 소련·동구에 대한전략품목의 수출을 경고한바 있다.
한·소 무역이 확대되는 경우 미국의 대한 우려 및 간여가 증가될 것임을 예견케 하는 징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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