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릴 땐 껑충 내릴 땐 찔끔…'분양가 조정' 하나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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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아파트 분양가 과다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서울 동시분양 분양가 조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입주자 모집 공고 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소시모)이 분양가를 평가해 주변 시세보다 높은 경우 구청에서 업체에 인하를 요청하지만 인하 폭은 생색내기에 그쳐 분양가 고공행진을 견제하지 못한다. 분양가를 높게 책정한 업체에 대한 규제 수단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소시모의 분양가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4차 동시분양 이후 이달 초 실시된 8차까지 분양가 조정이 제대로 안돼 국세청에 명단이 통보된 단지는 모두 18곳이다.

이번 8차 때는 서초구 서초동 두 곳과 마포구 염리동 한 곳이 통보됐다. 8차는 서초동 E아파트 57평형(기준층)의 분양가가 당초 10억8천2백10만원으로 예정됐으나 2천8백80만원 낮춘 10억5천3백30만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하지만 구청측은 "인하 폭이 작다"며 이 아파트 시행사와 시공사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국세청에 통보된 전체 단지 중 강남(3곳).서초구(8곳) 등 강남권이 11곳으로 전체의 61%에 이른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입지여건이 좋아 다른 지역보다 분양이 잘돼서인지 분양가 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통보된 단지의 3분의 2인 12개 단지가 재건축 단지다. 소시모 우윤재 연구원은 "재건축 조합원의 추가 부담을 일반 수요자가 떠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분양가 자율화 방침을 버리지 않는 한 분양가를 규제할 뚜렷한 방도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소시모측은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은 단지의 경우 분양승인을 내주지말 것을 요구하지만 구청에서 분양승인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분양가 과다책정 업체에 대한 거의 유일한 견제 수단인 국세청 통보의 효과도 의문스럽다. 업계 관계자는 "세금탈루 등의 조사는 입주해 사업이 끝난 뒤 이뤄지기 때문에 업체들에 부담감은 주겠지만 분양가 인상 욕심을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시모 김재옥 회장은 "분양가를 직접 규제할 수 없다면 분양원가를 공개해 건축비 등 각종 분양가 근거를 투명하게 해야 분양가 부풀리기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양원가 공개는 현재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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