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재편」대통령 지시 드러나|언론통폐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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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화국 출범 당시 강권적인 정통성 확보조치의 핵심으로 지목되면서도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던 언론통폐합 문제가 10일의 대문공부 감사에서 문공위 야3당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통폐합 문제는 국회 5공 특위 조사대상 44건에 포함되지 않아 「조사의 사각지대」속에 그대로 묻혀 버릴 수도 있었는데 야3당 의원들은 이날 문공부 감사에서 이 문제를 융단폭격 식으로 물고 늘어졌다.
문공부감사는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등 권력의 언론조작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특히 언론통폐합 주역들의 증인 출석문제를 놓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이날 통폐합 당시의 문공장관인 이광표씨, 통폐합을 기획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허문도 당시 대통령 비서, 이상재 당시 검열담당보좌관의 자진출석을 요청해 이들의 출석을 놓고 긴장감과 기묘한 호기심이 감돌았다.
특히 허·이씨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을 받았던 인물들이고 통폐합의 내막을 샅샅이 알고 있어 이들의 출석여부는 감사의 성패에 관련된 핵심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의원들의 언론통폐합에 관한 감사자료요구에 문공부 측은 『우리부로서는 알 수 없다』고 외면하고 있어 허·이씨의 증언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진출석은 거부하고있어 정식 증인채택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 동안 문공부 측은 의원들이 제출 요구한 △언론통폐합 발상·추진인사의 명단 △TBC·DBS의 KBS흡수를 자문한 교수·언론계 인사는 누구인가 △통폐합내용이 전전대통령에게 보고된 경위 △통합당시 신문·TV사장들을 소환한 경위, 포기각서 접수과정 등의 자료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해 왔었다.
그 동안 국회답변에서도 문공부와 상관없는 것으로 계속 주장해 왔으며 지난 임시국회에도 정한모 문공장관은 『언론통폐합으로 언론계의 급격한 구조개편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한다』고 문제점은 인정했으나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야당 측은 정장관을 제쳐놓고 허·이씨와 국보위 문공분과 간사였던 허만일 현 기획관리실장을 집중 공략할 작정이다.
야당 의원들은 언론통폐합이 △「80년 서울의 봄」을 마감시킨 신 군부가 정통성부재에 따른 이미지고양과 언론장악을 위한 충격요법을 쓴 것이며 △신문협회·방송협회의 자율결의 형식을 빌었지만 그것은 교묘한 언론통치술 출발이라고 보고 있다. 박석무(평민)·강삼재(민주)·김인곤(공화) 의원 등은 『6·29이후 복간을 신청한 신문사들이 하나같이 당시의 조치가 타의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느냐』고 말하고있다.
이들 의원들은 『허문도씨가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국보위 문공분과위원을 거치면서 통폐합의 「절묘한 시나리오」를 짰고 당시 보안사대공수사관인 이상재씨가 「강기덕」이란 가명으로 보안사 보좌관으로 언론검열단 실무를 총괄한 사실은 다 알려진 비밀』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또 『언론통폐합에 주도적 기능을 담당했던 세칭 「태평회」의 정체도 추궁할 것으로 보이는데 박의원은 『태평회가 이상재씨와 각 언론사 실무진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 측은 또 80년 11월 당시 노태우 보안사령관이 이상재씨로부터 받은 언론통폐합세부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지도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김인곤 의원은 『특수기관에서 관련자를 불법연행·협박, 심지어는 지하실로 끌고 가 강압에 의해 신문·TV등 언론기관을 빼앗은 과정을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야당 측은 이날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죌 수 있었던 것은 문공부 국정감사자료 중 대통령 지시사항 및 추진사항에서 언론통폐합 항목이 발견됐기 때문.
야당 측은 이 대목이 『언론통폐합이 언론의 공적기능제고를 위해 신문·방송협회의 자율적 결의를 통해 해당언론사간에 이뤄졌다』는 이제까지의 문공부입장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단서로 포착한 것이다.
이 자료는 대통령의 80년 계엄령해제후의 언론·종교대책 지시에 대해 △방송의 공영화 △신문사의 통폐합 재편 △통신사의 통합과 연합통신 신설을 추진사항으로 열거하고 있다.
야당의원들은 『언론 통폐합에 국보위·대통령실과 문공부가 깊숙이 관여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자료가 있음에도 문공부가 당시 조치와는 무관함을 주장해온 것은 사태를 은폐하고 국회의 조사를 피하기 위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자료는 언론통폐합의 실상을 공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의외의 소득』(최훈·평민)으로 계속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며 문공부가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문공부 측도 『모른다고 버티기에는 궁색하게 되어버렸지만 언론통폐합의 사후처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정도다. 아무튼 야당 측은 이를 근거로 파상공세를 펼칠 것이며 허·이씨를 어떻게 하든 증언대로 불러낼 복안이다.
이날 언론통폐합과 함께 소외 보도지침의 실상공개와 80년 해직언론인 명단을 작성한 최고책임자가 누구냐고 따져 문공부감사는 집권층의 언론매체지배를 물고 늘어졌는데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문제들이 얼마나 벗겨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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