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희망찾기' 여성이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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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째 졸업생이 나오는 데는 60년이 걸렸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1만 번째 졸업생이 나올 것이다."

28일 관악산 아래 서울대 공대 39동 건물에서 열린 공대 여성동창회 홈커밍데이(Home Comming Day) 행사장. 1946년 개교 이래 공대 졸업 여학생 수가 처음으로 네 자릿수를 기록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공대 여성동창회장인 김진애(건축가)씨는 '1만 번째 졸업생을 향한 꿈'을 얘기했다. 감회 어린 목소리였다. 서울대 공대에 여학생이 합격했다는 게 신문 기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공대 학부생 4600명 중 550명이 여학생이다. 이건우 교무부학장은 축사에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40%가 여학생이고 총장도 여성"이라며 "우리 공대도 이런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 과거엔 금녀(禁女) 공간=신혜경(건축과 77년 졸업) 중앙일보 전문기자는 "내가 다닐 때 공대 건물엔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며 "여학생이 공대에 모두 네 명이었는데 걸어가면 남학생들이 일제히 바라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교한 뒤 7년 만인 53년 첫 졸업생(성정자.작고.화학공학과)을 배출했다. 59년까지 39명의 공대 졸업 여학생이 사회로 진출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여학생이 더 귀해졌다. 60년대(16명), 70년대(11명) 등 20년간 총 여성 졸업생은 27명에 그쳤다.

2002년 이후 세 자릿수 졸업생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서울대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40% 정도지만 아직도 공대는 10% 안팎이다.

◆ 서울대 공대 나온 여성들=1000명의 졸업생 중 554명이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최초의 여성 교수는 54년 화공과를 졸업한 박순자 명예교수다. 2호 교수는 박 교수의 30년 후배인 전화숙(컴퓨터공 83년 졸업) 교수다. 교육계엔 차옥선(화공 56년 졸업) 한양대 교수, 백종숙(섬유공학 68년 졸업) 코네티컷대 교수 등이 있다. 건축과엔 비교적 여학생이 많았다. 지금껏 246명이 배출됐다. 지순(58년 졸업) 간삼종합건축사무소 상임고문, 김진애(75년 졸업) 동창회장 등이 현역이다. 정부 부처엔 송정희(전자공학 81년 졸업) 정보통신부 자문관, 장경순(건축 87년 졸업) 제주지방조달청장, 언론계에는 신혜경 중앙일보 전문기자, 지은희(화공 98년 졸업) SBS 인터넷 팀장 등이 있다. 김익영 국민대 명예교수는 57년 화공과를 졸업하고 백자 도예가로 변신했다.

◆ 공대의 미래도 여성에게 달렸다=서울대 공대 허은녕 대외협력처장은 "사법시험이나 의사 등의 분야에선 여풍이 불고 있지만 공대는 이제 시작"이라며 "공학이 기계 등 힘쓰는 일에서 디자인.기획 쪽으로 바뀌고 있어 여학생들이 어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면서 '여성 졸업생 1000호'가 된 김유라씨도 "공학이 남성의 학문이란 편견은 버려야 할 때"라고 했다.

고정애.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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