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안쏘는 북한, 존폐 기로에 선 한ㆍ일 군사정보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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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1월 23일 발효된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대해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반도 주변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협정 연장 결심했던 문 대통령 #北 미사일 발사 중지한 올해엔 어떤 결정? #북한 "협정 폐기로 판문점선언 의지 보이라" #"남북 관계 진전속에서 폐기 검토될 가능성" #미국도 변수,"협정 체결 당시엔 미국이 독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지시를 친필명령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지시를 친필명령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양국이 2~3급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내용의 이 협정은 이명박 정부에서 ‘졸속 논란’으로 서명 직전 단계에서 중단됐고,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발효됐다.

당시 정부는 “탁월한 일본의 정보를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며 “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에 대한 신속성과 정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까지 계속된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 국면에서 정부는 상당한 정보를 일본에서 받았다.

지난 5월 9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5월 9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협정은 1년마다 연장되며, 파기를 원하는 쪽은 만기 90일 전에 상대국에 통보해야 한다. 첫 만기였던 지난해 11월 협정은 한 차례 연장됐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반대한다”는 진보계 시민단체 등의 주장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엔  “협정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첫 ‘만기 90일전’이던 지난해 8월 예상과 달리 협정의 1년 연장을 결정했다.
양국이 교환한 정보의 현황을 꼼꼼히 살펴본 뒤 “미사일 관련 정보, 조선총련 등을 활용한 인적 정보 등 일본의 정보가 유용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이 지난해 6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도쿄 네리마(練馬)구의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이뤄진 지상배치형 요격미사일 'PAC-3' 배치 훈련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연합뉴스]

일본 방위성이 지난해 6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도쿄 네리마(練馬)구의 아사카(朝霞)주둔지에서 이뤄진 지상배치형 요격미사일 'PAC-3' 배치 훈련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연합뉴스]

하지만 협정은 한반도의 정세가 지난해와는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두번째 만기를 맞게 됐다.
문 대통령은 만기 90일 전인 8월 하순께까지는 연장이냐 파기냐의 결심을 내려야 한다.

먼저 지난해 11월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호 발사를 끝으로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한 게 변수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정했거나 지침을 내린 것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했던 협정 체결 당시나 그 위협이 현실화됐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한반도 주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본 이지스함 초카이[중앙포토]

일본 이지스함 초카이[중앙포토]

특히 남북 간의 대화 무드속에서 북한은 이미 협정의 폐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말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은 일본과의 군사협정 폐기 용단으로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갈라놓는 전략을 자주 펴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협정의 폐기를 한국에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남북 고위급 인사의 상호방문 가능성이 큰 8ㆍ15 광복절, 올 가을로 북한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쉽게 뿌리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협정 폐기가 북한과 주고 받을 수 있는 여러 카드 중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태도가 변수가 될 수 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과거 협정 체결이 가능했던 데엔 한국과 일본 정부를 뒤에서 강하게 독려했던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면서 “미국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가 협정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식통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과의 대화 노선에 치중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간 협정 자체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중지했다고 곧바로 한·일간 협정을 폐기하는 게 맞는지, 협정으로 인한 득과 실은 어느 쪽이 큰지,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 확대가 중국을 자극해 한반도 안보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한·일 관계에 미칠 악영향은 어느 정도일지, 협정 연장 여부가 결정될 향후 한 달 여 동안 찬반론의 대립이 거세질 전망이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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