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교포 숙부·고모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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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원아. 이게 꿈이 아니지. 그렇지.』
고모는 처음 보는 조카의 뺨을 맞비비며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고 숙부는 먼 산을 보며 말없이 손수건을 꺼냈다.『조국은 이렇게 잘사는데 사할린에 계신 아버지는 병석에서 남녘하늘만 바라보고 계셔요.』
조카는 북받치는 설움을 억누르며 차라리 담담했다.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인 국제야외조각초대전의 출품작가로 방한중인 재소교포2세 조각가 황대원씨(36·소련명「한·테본·바쿠마라」)가 20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노 프레스센터4층에서 숙부 황영희씨(70·충남 논산군 채운면 심암리), 고모 황마리아씨(58·충남 논산군 연무읍 죽평리)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날 상봉은 지난 18일 내한한 황씨가 그 동안 수차례 편지왕래로 알고있던 숙부·고모 등의 논산주소를 메모해와 올림픽조직위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황씨의 아버지 황영희씨(66)는 지난 43년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당해 지금까지 그곳에서 부인 최번임씨(68)와 함께 살고있다.
원래 본명이 황성희씨인 그의 아버지는 일제의 사할린 강제징용이 기승을 부릴 때 『장남인 형은 가문을 보호해야된다』며 형 대신 끌려갔다는 것. 그 이후로 소련에서 성희씨는 형 영희씨의 이름을 쓰고있다.
『아버지·어머니가 불쌍해요. 대한민국에 가게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처음엔 안 믿어요. 이번에 사진을 많이 찍어 조국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려야겠습니다. 그러면 믿겠지요.』
황씨는 그래서 90만원을 주고 산 비디오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사할린 교포들은 평생소원이 고국 방문입니다. 우리정부나 국민들은 교포들의 송환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일본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눌한 말씨지만 단호한 어조로 황씨는 일본의 맹성을 촉구했다.
18살 때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그곳 이르쿠츠크 미술아카데미를 수료한 황씨는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더비 미술경매 전에서 그의 작품이 고가로 팔릴 만큼 현재 소련의 1급 작가로 대우받고 있다.
황씨는 이·불·서독 등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여러 차례 가졌는데 특히 내년 3월말 핀란드에서 갖는 2인 전이 끝나면 다시 한번 고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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