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끝까지 007 방불케한 회담, 한 편의 '비밀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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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작전' 방불케한 회담…"靑 핵심 참모도 회담 시작 뒤 통보"

5ㆍ26 남북 정상회담은 한 편의 비밀작전이었다.
회담 추진부터 실무준비, 회담장 이동까지 모두 극비에 붙여졌다.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 배석한 청와대 참모들마저 “나도 내용을 몰라서 들어보려고 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을 전격 제안한 것은 25일 오후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연락 채널을 통해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 의사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날 오후 3시 청와대에선 정의용 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회의가 끝난 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북ㆍ미 정상 간의 직접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관련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판문점행’은 이 자리에서 결정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측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이라며 격의 없는 소통 방안을 제시해왔고, 관련 장관과의 협의를 통해 대통령께 회담을 건의했다”며 “25일 밤부터 26일 오전까지 실무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 회담이 개최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장관 협의가 25일 오후 NSC 회의였던 셈이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지켜보는 청와대 참모진.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지켜보는 청와대 참모진.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NSC 회의 결과를 브리핑했던 윤 수석은 NSC 멤버가 아니다. 윤 수석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26일 오후 7시 무렵 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면서 기자들에게 “저도 이 사실을 전달받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안보라인의 핵심을 제외하곤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27일 회견장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도 “소통수석실은 회담이 시작된 이후에야 회담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은색 벤츠 차량이 통일각에 도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평소 알려진 검은색 차량이 아닌 은색 차량을 탔고, 경호 차량도 최소화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은색 벤츠 차량이 통일각에 도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평소 알려진 검은색 차량이 아닌 은색 차량을 탔고, 경호 차량도 최소화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회담이 열린 판문점 북측 통일각으로 이동할 때 경호 방식도 평소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검은색 경호 차량이 아니라 은색 벤츠 차량을 이용했다. 수행 인력도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으로 간소화했고, 경호 인력도 4대의 차량에 나눠 최소화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광등을 켠 청와대 차량이 도로를 줄지어 달리면 대통령의 판문점행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며 “이동 인력을 줄인 것도 보안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또다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27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또다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27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6ㆍ12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준비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었다”며 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회담을) 요청해왔고 남북 실무진의 통화를 통해 협의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전격적으로 회담이 이뤄졌다”며 “회담 사실을 언론에 미리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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